초록빛 전광판 앞에서
초록빛 전광판 앞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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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말 종합주가지수 1500선이 무너지는 증권사 객장을 우연찮게 보게 됐다. 은퇴 자금을 주식에 넣어놓은 이들이 많은 동네 증권사 객장이다. 그런 까닭에 가끔 들러보면 늘 앉을 자리가 모자랄 정도였던 증권사 객장이다. 그러나 그날은 뒤늦게 내리는 궂은 비만큼이나 을씨년스러웠다. 절반을 넘는 빈자리는 전광판을 바라보는 이들의 탄식소리로 채워지는 듯했다.
그 와중에도 증권사 영업 직원들은 어떻게든 팔고 나가려는 고객들에게 매입을 권유하느라 진땀을 흘리고 있었다. 개별 주식의 내재가치를 내세우며 권하기도 하고 종합주가지수가 횡보 중의 단기 하락일 뿐이라며 추세를 기다리라고 권하기도 하는 그들의 역할이 안쓰러워 보였다.
공연스레 사고파느라 수수료만 물다보니 투자원금은 거의 반 토막 나다시피 된 은퇴노인들의 한숨소리 앞에서 권유하는 영업직원들의 목소리에도 힘이 빠져있다. 이것저것 매입을 권하긴 하면서도 자신 있게 권해볼 엄두는 나지 않는 탓일 게다.
2000포인트 고지를 넘으며 잠시의 조정기간만 거치면 될 줄 알았던 주가가 이렇게 곤두박질칠 것을 정말 시장은 예상하지 못했을까 궁금하다. 해외 발 여러 불안한 동향·전망만으로도 시장은 자숙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핫머니들은 석유·식량 등 현물·선물 시장으로 눈이 돌아가 있고 세계적인 경기침체가 예고됐다. 한국은 거기 더해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까지 등장한 판이다.
국내적으로는 물가를 쑤석대는 공공요금의 잇단 인상, 모든 촉각을 투기 시장에 쏠리도록 유도하는 부동산 정책으로 주식에 돈이 붙어있지 못할 조건만 늘어간다. 달러를 냅다 내다 팔아 외국인 투자자들을 도망가게 하는 외환 정책, 거기에 더해 여인네 속곳까지 내다 팔 양으로 아무거나 민영화 잔치를 벌이는 공기업 정책까지 무엇 하나 증권시장이 살아날 건더기는 없다. 뭘 믿고 여전히 주가가 더 오를 거라고 고객들에게 권하고 있는지 궁금한 지경이다.
물론 이런 지적을 했다가 오늘 혹은 내일 당장 주가가 치솟으면 글 쓴 처지가 참 민망해질 일인지라 매우 조심스럽다. 그러나 이리저리 고개 돌려봐도 주식시장에 당장 쨍하고 해가 뜰 조짐은 보이지 않는다. 성장이라는 달콤한 약속을 업고 집권한 이명박 대통령마저도 이미 내년 하반기에나 경기가 좋아질 것이라고, 1년만 참으라고 권한 마당 아닌가.
증권사 입장에서는 물론 거래가 끊어지도록 방치할 수 없을 터이다. 그러나 은퇴자금을 넣어놓고 주식시장만 바라보고 있는 노년의 투자자들에게 그 자금 다 털리도록 자꾸 사고팔기만 권하는 것은 시장 자체로만 봐도 너무 무책임한 일이 아닌가 싶다.
물론 주식시장은 반복적으로 폭락 장세를 경험해왔고 앞으로도 그런 패턴이 크게 변하지는 않을 것이다. 주가가 떨어졌다고 너나없이 팔기만 해서야 시장이 성립할 수도 없을 터이고 하락장세가 영원히 가지도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시장을 유지시키기 위해 개인 고객들을 제물로 삼는다면 시장의 신뢰는 어떻게 될까.
그간 하기 좋은 말로 개인투자자들은 직접투자보다 펀드투자를 하라고 권했지만 지금의 시장상황에선 펀드가 오히려 앞장서서 폭락하는 기현상마저 보이고 있다. 수익은 고사하고 매매손실을 보게 돼 원할 때 팔기도 어려운 지경이 된 것이다.
투자자 입장에선 펀드매니저들이 고객 돈을 너무 만만하게 본 것 아니냐 싶어지게 생겼다. 이럴 때 시장 탓만 한다면 그건 너무 아마추어적 행태일 게다. 어떤 상황에서든 전문가는 자신을 믿고 투자한 고객들의 최소한의 안전을 확보할 방안을 마련하고 나아가야 마땅하다.
주식투자 상담가가 됐든 펀드매니저가 됐든 그들은 전문가다. 마땅히 일반 투자자들의 올바른 판단을 돕는 게 그들의 역할이고 그를 통해 신뢰를 쌓아가는 위치에 서 있다. 당장의 급한 마음에 시장의 기반을 삭아 없어지게 하는 권고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를 담당자들뿐 아니라 증권업계 모두가 생각해 봐야 할 일일 듯하다. 시장상황이 나쁘기에 더욱더.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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