되살아나는 외환보유고의 악몽
되살아나는 외환보유고의 악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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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전의 악몽이 자꾸 떠오른다. 급등하는 달러 값을 잡겠다고 허둥지둥 시장 개입을 한 정부가 외환보유고를 확 줄여놨다는 데 편한 잠을 잘 수는 없지 않을까.
정부는 그때나 지금이나 걱정할 것 없다고 말한다. 그 땐 경험이 없었기에 정부 말을 믿고 싶었고 또 대부분의 사람들이 믿었다. 몰랐으니 그랬다 쳐도 그런 경험은 한번으로도 끔찍하다.
그런 경험도 있다 보니 이번엔 정부의 장담에도 마음을 놓을 수가 없다. 전래의 우리말에 ‘설마가 사람 잡는다’는 속담이 있고 근래의 시쳇말로는 또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라는 표현이 있어 믿고 싶은 마음이 아닌 믿을 만한 상황을 믿으라고 충고한다. 지금 상황을 믿게 만들고 믿어라 해야 옳지 않겠는가.
집권하자마자 인위적으로 환율을 끌어올리려 곳간을 헐어 시장에 개입했다. 그런데 힘 빠지게 이번엔 달러가 강세로 돌아서며 우리가 원하던  원치 않던 상관없이 환율이 급등하고 있다. 이제 다시 외환을 시장으로부터 주워 담기에는 부담이 커졌다.
그게 다가 아니다. 옛날처럼 자본규모가 큰 정부 보유 상장기업을 민영화할 경우 국내 증시에만 영향을 미치고 말 시대가 아니다. 그런데 올해 서둘러 산업은행을 민영화하고 다른 공기업들도 잇달아 민영화하겠다고 청사진을 속속 내놓고 있다. 외국인 채권자들이 걱정하고 돈을 회수해갈 경우의 수를 발견하고 걱정하는 소리가 나왔다. 심지어는 모라토리엄까지 염려된다고 했다.
산업은행 문제만도 아니다. 우리의 외채 구조도 문제다. 지난 3월말 총외채 규모는 4125억달러로 한분기 만에 303억달러가 늘었다.
물론 외채의 증가 자체는 양면성을 갖고 있다. 국내 투자금의 증가로 인한 외채의 증가를 굳이 문제 삼을 바가 아니기 때문이다. 문제는 단기외채의 비중이 높다는 점이다. 만기 1년 이내의 단기외채가 총 1765억달러로 총 외채의 42.8%를 차지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런 상황에서 외환보유고가 줄어든다는 것은 그야말로 해외 핫머니에 한국의 목숨 줄을 내맡기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그런데 최근 발표된 외환보유고 상황을 보면 월간 사상 최대 폭인 103억8000달러나 급감했다고 한다.
물론 우려는 어디까지나 우려이고 미리 마땅한 대비를 한다면야 별문제가 안 될 수도 있다. 다만 현재 외환을 다루는 솜씨가 10년 전보다 더 나아진 것 같지 않아 보이니 걱정이 가시질 않을 뿐이다. 마치 거친 숙수의 칼솜씨를 보는 것만 같아 섬뜩섬뜩한 것이다.
우리의 시장불안이 커지면 그것만으로도 외국인 자본의 엑소더스는 시작된다. 지금 세계경제의 상황도 영 좋질 않다. 우리 경제의 스태그플레이션 우려도 그렇고 세계경제 자체의 침체 우려도 그렇고 지금은 정신없이 수렁 속으로 빠져드는 시기인 듯하다.
수렁에 발이 빠지면 두려운 마음에 성급하게 허우적댈수록 점점 더 깊이 빠져든다. 지금 우리의 외환정책이, 또 경제정책 전반이 꼭 그 짝이다. 일단 발이 빠질 때는 잠시 기다려야 한다. 조금 기다리면 빠져드는 상황이 멈춘다. 그때 주변을 살펴 잡을 것을 찾아보고 안전선을 확보한 다음에 빠져나와야 한다.
이런 이치는 경제상황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증권시장에서도 시장이 하강국면에 접어들 때면 시기를 기다렸다가 반등시점에 올라타라는 말을 듣는다. 개인의 투자든 기업의 투자든 일단 하강국면에 들면 시기를 보고 기다리는 지혜가 필요하다. 국가 또한 같을 터이다.
현 정부는 탄생부터 ‘성장우선주의’를 외치며 나왔다. 그러니만치 수출에 올인 해 빨리 성장곡선을 끌어올리고 싶은 정부의 조급증을 이해 못할 바도 아니다. 그러나 아무리 급해도 급류 속에서는 섣불리 물살을 거슬러 오르려 덤비는 게 아니다.
통상적으로는 환율이 오르면 수출도 늘 것이라 여기지만 바깥 형편도 여의치 않다. MB 정부는 설마 30년 전에 성공한 정책수단이 오늘날에도 유효하리라는 환상을 품고 있는가.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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