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와 민족주의
촛불시위와 민족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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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즈, USA투데이, 파이낸셜투데이 등 대표적인 미국 언론들이 계속되는 촛불시위를 보며 다시 예의 민족주의 경계령을 발동하고 나섰다. 미국의 일방주의에 스스로 나아가 굴복하고 만 정부에 항의하고 잘못된 협상을 다시 하라 요구하는 것을 반미 정서로 해석하는 것이다.
단순한 쇠고기 수입 협상의 문제만으로 이슈를 한정 짓고 싶어 하는 국내 메이저 신문들에 비하면 그나마 심층적으로 보고자 하는 미국 언론의 자세가 돋보인다. 그럼에도 역시 미국 언론이구나 싶다.
한국사회에 반미 정서가 상당히 자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분단 당사국으로서 분단 상황에 대한 인식이 미국과 다르다고 반미라고 규정하는 시선이 있다면 분명 한국엔 반미 분위기가 널리 퍼져있다. 그간 미국은 강대국 특유의 오만함으로 국제역학관계에 허약하기만 한 한국정부를 만만하게 대해왔다는 인식은 진보·보수 가릴 것 없이 많은 한국인들이 갖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의 민족주의를 경고하는 그 같은 기사들이 나온 날짜가 미국 언론들로서는 그럴 만한 때였다. 국내 최초의 반미 촛불시위를 촉발시켰던 효순이 미선이 6주기였던 지난주 금요일(6월13일)을 앞둔 시기였으니 말이다. 둔감하기 짝이 없는 정부·여당이나 치안 당국도 사흘 전 6.10민주항쟁 21주년에 현재의 이슈를 얹어 대규모 시위가 열렸던 뒤끝이라 또다시 대규모 시위가 있을 것을 예상, 전전긍긍하던 차였으니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지금 한국의 대중들은 미국이 자기 이익을 지키기 위해 얼마나 야비해질 수 있는지 지난 시절 동안 충분히 학습한 상태다. 국제관계에서 강대국들이 들먹이는 정의라는 게 얼마나 가식적인 것인지도 부족함 없이 익혔다.
그러니 만치 이제 반미의 기치를 내걸기보다는 그런 미국 앞에 우리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당당하지 못한 한국 정부를 질책하고 있다. 이는 지난 10년간의 자주적이고 민주적인 정치사가 심어준 매우 큰 학습효과다.
지금 한국의 대중들은 어차피 국제사회에서 동반자로 함께 해야 할 미국을 거부하는 게 아니다. 앞으로도 지속될 한·미 관계를 종적 서열구조가 아닌 횡적 수평구조로 정상화시켜 갈 우리 사회의 내적 청사진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미 한국인들의 의식은 지난 20년간 상당히 글로벌화 됐다. 거의 모든 상품, 서비스 시장이 개방되고 전 세계 150여 개국에 우리 국민들이 나가 활동하고 120여 개국 국민들이 한국 땅에 와서 일하고 공부하는, 그런 나라가 됐다.
한국 증시는 세계 증시의 움직임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환율도 금리도 국제적 동향에 섬세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 세계적인 고유가 현상이 당분간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13일 0시부터 화물연대가 총파업을 시작했다. 하필 촛불시위가 계속되는 가운데 화물연대까지 파업에 돌입해 한국 정부로서는 악재가 겹친 셈이지만 이 역시 한국만의 현상이 아니다. 유럽과 남미에서 이미 화물차들이 일할수록 손해라며 운행을 멈추고 시위에 나서는 상황이다.
이제 한국인들의 행동에 함부로 폐쇄적 배타적 민족주의의 너울을 씌우는 것은 고정관념에 매인 자의 일방적 태도다. 한국을 미국의 속주쯤으로 여겨온 시각의 연장이 아니라면 한국 정부의 어리석음을 시정하려는 한국인들의 노력을 함부로 속단하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
더욱이 한국사회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늘어난 노숙자와 실직자들이 그들의 답답함을 호소할 매개를 찾아 헤매고 있다. 촛불시위 중반쯤에 일시 나타났던 과격시위자들이 대부분 그들이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로인해 프락치 소동마저 일었다.
10대 청소년들이 자신들의 건강권을 내세우며 앞장선 촛불집회는 이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부모세대를 포함해 전 국민적 행사로 커져가고 있다. 마땅히 보는 이들마다 다른 관점에서 해석할 여지가 많다. 하지만 아무나 함부로 추단할 현상은 결코 아니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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