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와 의사소통
MB와 의사소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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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단어가 사용하는 이들에 따라 각기 어떻게 다르게 쓰이는 지를 확실히 볼 수 있는 이즈음이다. 정부·여당도 ‘소통’의 중요성을 얘기하고 국민여론도 ‘소통부재’의 문제를 지적하지만 얘기가 나오고도 양쪽의 접근 거리가 별반 짧아지질 않고 있다.
이명박 대통령 취임 1백일 만에 열린 9개 지역 지자체장 보궐선거에서 경북 청도 1개 선거구만 건지는 참패를 당한 한나라당이 정부와 국민 간의 ‘소통’을 우선 과제로 들고 나왔다. 정부 부문에서도 ‘소통’의 부족을 거론하고는 있으나 정작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는지는 의구심이 든다. 이미 한미쇠고기협상 직후의 격렬한 반발에 대응해 ‘의사소통 부족’을 인정하고도 여전히 국민대중의 요구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거듭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을 보며 성급한 젊은이들은 벌써 이명박 대통령에 대한 기대를 접으려 한다. 그들은 청와대가 보여주는 이명박 대통령의 이미지 자체가 이미 희망 없음을 보여준다고도 말한다. 그 단적인 예로 디지털 세대의 눈에 비친 아날로그적 상징 이미지를 든다. ‘와이셔츠 차림에 넥타이를 맨 채 한 손에는 만년필을 들고 조·중·동 3개 신문이 가지런히 놓인 책상 앞에 선 대통령’이 그것이다.
젊은이들은 또 말한다. 컴맹인 대통령이 인터넷을 달아오르게 하는 인터넷 시대의 여론을 어찌 알겠느냐고. 단지 촛불 들고 거리로 나선 소수 대중이 전부인 줄 착각하고 있는데 무슨 대화가 되고 소통이 이루어지겠느냐고 묻는다.
아마도 인터넷을 잘 다루고 디지털 세대의 방식으로 청와대를 휘저으며 전통적 어법에 비해 점잖지 못한 어법을 마구 구사하던 전임 대통령과는 대비되는 이미지를 만들어 보수적 민심을 사로잡으려는 계산이었는지는 모르지만 젊은이들의 눈에는 근본적으로 소통이 안 될 사람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런 젊은이들의 인상이 결국 사실이라는 확증을 심어준 것 역시 정부였다. 한미쇠고기협상에 대한 반대여론이 80%에 달한다는데도 장관고시를 강행한 것은 여론을 무시하는 불도저식 밀어붙이기로 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인터넷 여론의 의미 자체를 인식하지 못한 무지의 소산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군부 독재정치를 경험한 세대들이 주로 전자로 인식하는 것과 달리 민주화된 정부만을 보고 자란 지금의 10·20대 젊은이들은 대체로 후자로 인식하는 듯하다.
지금의 젊은이들은 ‘탈이념 세대’다. 거리로 나선 젊은이들을 길러낸 386, 그들 부모세대가 강한 이념형 청춘을 보낸 것과 달리 지금의 젊은이들에게 이념은 낯설고 촌스러운 발상에 불과하다. 그래서 거리 시위의 양상도 1987년 6월 항쟁과는 사뭇 다르다. 유모차에 아이를 태우고 부부가 함께 아이의 간식거리까지 챙겨 촛불시위의 한 자리를 채운다. 퇴근길의 직장 동료, 동종업종 동료들끼리 자신들의 정치적 성향과는 무관하게 하나의 이슈를 함께 들고 거리로 나선다. 그들에게 시위시간과 장소를 알리는 것은 인터넷을 통한 사발통문이다. 아무리 경찰력이 배후세력을 잡겠다고 나서도 잡을 수 없을 터이다. 누가 시켜서 거리로 나설 세대가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재미없는 선거전에는 부모들의 강권에도 불구하고 투표조차 않던 세대 아닌가.
이런 젊은 세대들에 비해 연령적으로나 그의 개인적 경력으로나 전형적인 아날로그 세대, 굴뚝산업시대의 첨병이었던 MB가 이제 새삼 컴퓨터를 배우고 인터넷을 배운다고 젊은 세대들과의 의사소통이 원활해질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 해도 이제 귀 기울여야 할 대중들이 어느 구석에서 숨 쉬고 소리치며 살아가는지만은 제대로 알아볼 수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는 그 어떤 펼치고픈 청사진이 있었다 해도 결코 그 그림을 펼쳐낼 수 없을 것이다.
귀가 나쁘면 당사자가 보청기를 껴야지 왜 알아듣지 못하게 말하느냐고 멀쩡한 상대방을 타박해댈 일이 아닌 것이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저작권자 ⓒ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서울파이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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