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뢰 상실의 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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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시장은 여전히 낙관적 전망이 넘쳐나고 있다. 죽을 쑤던 지수가 상승 추세로 돌아서자마자 시장은 흥분을 보인다. 한 포털의 증권사이드에서 진행한 설문에 60% 이상의 투자자들은 주가가 바닥을 쳤다고 답하고 한 증권사는 연말 지수 2300포인트를 예상한다.
그런데 주식시장의 이런 흥분과 거리에서 마주치는 서민들의 기대 사이에는 메우기 어려운 깊은 골이 보인다. 시중의 체감경기와 전망이 주식시장의 기대나 전망과는 확연히 겉도는 모습이다. 대체 그 이유가 뭘까.
한국사회에서는 정치도 그렇고 경제도 그렇고 바닥의 힘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왜 정치가 국민들로부터 분리되어 멀어져만 가는지를 단지 소득수준이 높아진 데 따른 국민들의 정치무관심 때문이라고 속 편하게만 여긴다.
그러다 이번 미국산 쇠고기 수입 문제를 둘러싼 소요를 접하곤 야당의 정치적 공세 때문이고 전교조 교사들의 선동 때문이라는 식의 참 무책임하고도 편의적인 해석을 뻔뻔스러울 만큼 당당하게 내놓는다. 광우병 위험에 대한 젊거나 어린 세대들의 위기감에 대해서는 거의 감조차 잡지 못하고 있다.
작금의 이런 현상은 여당이고 야당이고 매한가지다. 청소년들이나 그들의 부모들이 얼마나 불안한지, 어떤 대책을 원하는지에 그다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다. 단순한 건강염려증 정도로 치부하고 있다.
국회 청문회에서 우물쭈물, 우왕좌왕하는 정부 관료들을 보고 있자면 참으로 세금이 아깝다. 명령에 무조건 복종하도록 길든 학교시절 모범생들이 지금 한국사회를 방향도 없이 끌어가고 있는 모습을 뼈저리게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소신 한마디 제대로 피력할 수도 없이, 조직의 성격에 무관하게 그저 조직에 충성하기만 하면 저절로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고 세상이 변해도 보신되는 사회적 전통은 식민지 시절 소위 지도층들의 대거 친일행각을 생산해냈다. 그리고 그 시스템이 해방정국을 거치고 대한민국 정부가 들어서서도 고스란히 계승됐다.
그렇기에 참여정부에서부터 쇠고기 협상에 나선 관리는 정권이 바뀌며 원칙도 바꿔 자리보전에 성공했다. 식민지 유산의 단절 없이 이어진 대한민국 사회의 비틀어진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이처럼 정권이 아무리 바뀌어도 같은 얼굴이 바뀐 정권의 요구에 오직 충성만 바치면 살아남고 승진이 보장되어 사회적 성공으로 평가받는다. 이런 나라가 이제는 목이 곧아 바닥을 볼 수 없게 된 사회지도층을 양산했다.
서민들은 정부에 대한 기대치가 매우 낮다. 어느 정권이어서가 아니라 매번 같은 관료들이 말만 바꿔 탄 채 재등장하곤 하는 포장만 새 정부에 무엇을 기대하지 못하는 것이다. 아예 믿질 않는다. 속된 표현으로 ‘그놈이 그놈’이라고들 한다.
정권 관계자들도 참으로 일해 먹기 어려울 게다. 거침없는 직설적 표현을 즐겼던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그 말 한마디에 만신창이가 되도록 얻어맞았으니 또 누가 쓰긴 어려운 표현이 됐지만 말이다.
정부는 워싱턴 정부만 바라보고 주식시장은 뉴욕증시만 쳐다보니 영영 한국 사회의 바닥은 보지 못할 터이다. 그렇게 내놓는 각종 정책들은 그래서 늘 예상과 다른 결과를 내놓게 되고 정책생산자들은 뒤늦게 당황할 게다.
정부가 국민들 보기에 믿을 만한 수준만 됐어도, 이 사회가 가진 감시 시스템을 신뢰할 수만 있었어도 광우병 위험에 지금보다는 덜 불안할지도 모른다. 미국산 쇠고기 때문에 시작된 파동에 한우 쇠고기까지 못 먹는 것은 기업의 도덕성은 물론 유통시스템을 감시할 정부 능력에 대한 불신 때문이다. 관료들이 쇠고기 협상을 저 수준밖에 못한 것은 국민의 존재보다 미국의 반응에 더 예민한 정부여서라고 믿어도 상관없다는 배짱은 부디 아니길.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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