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우, '고정환율제'라니
와우, '고정환율제'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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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들어 개명까지 한 기획재정부의 첫 수장이 된 강만수 장관. 그가 취임하자마자 환율시장 개입을 거론함으로써 IMF의 악몽을 상기시키는 악수를 뒀다. 스스로가 정부의 과도한 환율시장 개입으로 초래된 외환위기 당시 정책 책임자였던 강 장관이다. 그의 취임 일성이 하필 환율시장 개입 운운이었으니 외환시장이 출렁이는 수준을 넘어 시중에서도 자글자글 반응이 이는 것은 당연하다.
물론 야당의 공세는 정치적 수려니 할 수 있다. 향후 환율시장이 염려스러운 대외적 요소들도 많다. 당장 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달러를 보유한 중국이 그동안의 고속성장을 멈추고 급격한 감속 상태로 접어들 경우 보유 달러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국내 외환당국의 대응책 마련이 필수적일 터이다. 당장 세계 4위의 달러 보유국인 한국 정부가 보유한 달러의 처리 문제도 만만한 것은 또 아닐 터이다.
그렇다고 ‘아, 옛날이여’를 외칠 수는 없다. 개방경제 시스템이 거의 완전히 정착된 지금 고정환율제 카드를 꺼내드는 마구잡이식 발언은 위험하다. 전직 대통령의 소위 ‘막말’을 훈계하던 한나라당 정권이다. 그 정부 각료가 정치적 포석도 아니고 세심한 드라이빙이 필요한 경제 정책을 논하는 자리에서 덤벙대며 ‘터트리기식’ 발언을 쏟아내서는 곤란하다. 그런 발언을 자제할 수 없는 경제 수장은 참 위험하다.
지금 한국 경제가 처한 처지는 경제 수장의 다듬어지지 못한 발언이 허용될 만큼 그리 호락호락하질 않다. 금리도 물가도 증시도 다 몹시 불안해진 상황 아닌가. MB정부의 경제성장 목표도 취임하자마자 수정이 불가피해 보이는 데 경제 수장의 유연성 없는 정책 철학 때문에 위험을 증폭시켜서는 안 될 일이다.
미국이 금리를 인하해도, 국내의 장단기 시장금리가 하락하고 있어도 한국은행은 국내 물가가 불안하기 때문에 기준 금리를 내릴 수 없어 지난주 금요일 금통위에서는 결국 5.0% 동결 결정을 내렸다. 물론 시중 금리가 계속 주춤거리며 내려간다면 기준금리를 계속 붙들어 둘 수는 없을 터이다. 다만 당장 쪼르르 따라가며 기준금리를 내리지 못할 뿐.
혹여 새 경제팀들이 성장 클러치를 밟지 못해 안달이 난 것이라면 그 또한 참으로 큰 걱정거리다. 세계자원 가격의 폭등으로 인한 경제적 위험도는 너나없이 높아졌지만 특히나 자원빈국 대한민국의 경우는 더욱더 조심조심 정책의 발걸음을 내디뎌야 할 때다.
금방 큰 변이 닥칠 듯 호들갑을 떨 일도 아니지만 허풍쟁이 배포 자랑하듯 태평스럽게 여길 상황도 아닌 것이다. 변화하는 국제시장 상황과 그에 따른 국내시장 상황 모두를 면밀히 관찰하며 최적의 답을 찾기 위해 다수가 함께 머리를 맞댈 시기다. 온고지신은 좋지만 옛날엔 어땠느니 하며 답습하려는 게으름, 완고함은 용납해선 안 된다.
조선왕조 5백년이 민족적 수치를 안기는 비극적 결말로 마감한 가장 큰 요인은 바로 사대부 관료들의 그 사상적으로 게으르고 완고했던 악습이었다. 낡은 ‘법도’만을 신앙하는 다수 속에서 살아있는 경제정책을 설파하던 이들은 종종 고립되고 개인적으로 몰락하는 불행을 겪으며 왕조를, 민족을 몰락의 길로 이끌어갔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경제’를 말하는 이들 가운데도 해외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교과서적 사고의 틀에 갇힌 채 살아 움직이는 경제의 실체를 종종 외면하며 대중과 후학들을 오도하곤 한다. 그래서 학문을 탐구하는 대신 배운 학설을 단지 신앙하는 이 사회의 다수 리더들이 불안하다.
고정환율제로의 회귀를 언급한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도 혹여 20년, 30년의 꿈만 붙들고 씨름하는 건가 싶어서 걱정스럽다. 정부 부처는 속성한 개입의 유혹을 자제하기 어렵고 시장은 간섭 없는 거래를 원하는 게 당연한 속성이다. 그리고 정부가 반드시 개입해야 할 부분도 있다. 그것은 국가 공동체의 영속성을 지키고 지속적 발전을 위한 공공성, 공정성을 지켜나가려는 개입이어야 마땅하다. 작은 정부로 그게 가능할지는 지켜 볼 일이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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