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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년은 짧다면 짧고 길면 길다할 수 있는 시간이지만 정통부가 남긴 흔적은 나름대로 뚜렷하다. 2000년대 초 벤처 열풍을 이끌었으며, 지금은 각 가정마다 안 깔린 곳이 없는 초고속 인터넷의 보급, 우리나라 성인 대부분이 보유하게 된 핸드폰의 확산 등 분명한 공적을 가지고 있다. 덕분에 우리나라는 이 기간 동안 전자정부 순위와 1인당 핸드폰 보급률, 가구당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 등에서 전 세계 상위권을 독차지하다시피 했다. 이는 인터넷, 통신, 방송, SW 등 다양한 IT정책을 정통부로 일원화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물론, 모든 것이 정통부의 功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이런 정통부가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아쉽기는 하지만 사실, 정통부 폐지 그 자체가 큰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정작 문제는 폐지보다 기능 해체에 있다. 기존 기능들이 4개 부서로 갈갈이 찢어질 경우, 통일된 IT정책이 나올 길은 요원해 진다.
이번 개편안의 목적이 정부조직의 슬림화를 위한 것이라고는 하지만, 웬지 뒷맛이 씁쓰름한 것도 이 때문이다. '정부조직의 슬림화'란 중복되는 정부의 기능을 통합하고, 정부가 광범위하게 간섭하는 부분을 대거 시장에 넘기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거꾸로 정통부의 폐지는 중복된 정부 기능을 통합하기는커녕, 통합된 정부 기능을 4개 부처로 분산시키는 꼴이 되고 말았다. 시장입장에서 봐도 간섭 부분은 동일한데, 소관 부처만 늘어나 혼동만 가중되고 있다. 입으로 외치는 말과 행동이 따로 놀고 있는 형국이다.
사실 정통부는 부서 폐지에 대해서 무조건적인 반발을 한 게 아니다. 정통부는 폐지가 아닌 IT관련 정부기능의 일원화를 일관되게 주장했다. 이미 정통부 내에서는 ‘방송통신위원회’가 설치되면서 부처가 공중분해 될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지난 2006년부터 방송위원회와 함께 ‘방송통신위원회’ 설립을 논의했으니까, 약 3년 전부터 존치에 대한 욕심을 접고 있었던 셈이다.
최근의 IT 트랜드는 컨버전스, 즉 융합이다. 통신과 방송의 융합,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융합, 방송과 인터넷의 융합 등이 계속해서 시도되고 있다. IPTV, VoIP, 서버의 가상화 솔루션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에 따르면, 통신과 SW는 지식경제부로, 방송은 방송통신위원회로, 전자정부 기능은 행정안전부로, 디지털 컨텐츠는 문화부로 이관된다. IT업체가 자신의 소관부처가 어디인지 파악하기도 힘들어졌다.
더구나, 전세계적으로도 방송과 통신, 인터넷 등의 IT관련 정책을 하나로 묶어 부서를 일원화시키는 것이 하나의 추세다. 영국, 일본, 호주 등이 그렇다.
그렇다면 이번 개편안을 통해 우리나라는 세계적인 추세와 IT의 기술적인 흐름에 전면으로 반하는 셈이 된다. 참으로 용감한 발상이 아닐 수 없다. 남들이 ‘예’라고 말할 때, 혼자 ‘아니오’라고 말하는 고집스런 태도가 엿보인다.
돌연, 5년 뒤가 궁금해진다. 그때도 정통부의 해체에 대해서 올바른 정책이었다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 IT산업이 한 단계 발전했다고 떳떳이 말할 수 있는 인수위 인사가 누가 있을지.
이상균 기자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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