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소비의 힘을 기억하라
[홍승희 칼럼] 소비의 힘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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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이 세계 최강국인 이유는 무엇일까. 국부와 국방력이 우선 꼽힐 것이다. 국토면적도 넓지만 세계 최대는 아니고 인구수로는 중국이나 인도와 비할 바가 아니다.

그러나 경제학계 일각에서는 미국의 진정한 힘은 소비력이라는 주장이 있다. 무역에서 소비력은 강력한 힘이다. 한국이 미중 무역 분쟁의 틈새에서 미국의 압박에도 불구하고 중국시장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같은 이유로 미국과의 관계가 불편해지는 것도 바라지 않는다.

현재 한국의 최대 교역국은 중국이다. 미국은 두 번째 교역국이다. 지리적 이유도 작용하겠지만 그동안 구축되어온 전세계 생산구조의 밸류체인화에 기인한 점도 있다.

교역량만 중국 다음 미국이 아니라 한국 입장에서 무역흑자 규모면에서도 이 순위는 유지된다. 한국이 일본의 경제공습에 적극 대응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도 한국 기술력의 수준이 높아진 것 못지않게 오랜 기간 지속되어 온 대일 무역적자일 것이다. 적어도 수출에 큰 타격이 없다는 판단이 만약의 경우 일본을 손절할 수 있다는 강경한 입장을 갖게 만든 셈이다.

소비력은 무역상대국에게 있어서 결코 가볍게 볼 수 없게 만드는 힘인 것이다. 이는 국가 간 무역에만 적용되는 논리가 아니다. 소비 없는 생산이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은 굳이 경제학이 아니어도 상식 아닌가.

일본 경제가 잃어버린 10년이니 20년이니 하는 말이 나오게 만든 바탕에도 소비하지 않는 일본인들의 습성이 크게 작용했다는 분석이 있다. 코로나19가 번지기 전까지도 일본은 물가가 너무 오르지 않아 디플레이션을 걱정했다.

일본의 소비세 인상도 정부 재정악화로 인한 세수감소를 만회하려는 의도 못지않게 인위적으로나마 물가를 끌어올리려는 시도가 숨어 있었던 것일 수 있다. 물론 그로 인한 소비 위축 우려가 더 크게 거론되기는 했지만.

내수를 더 위축시킬 가능성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자국내 큰 반대여론을 무시하며 소비세 인상을 강행할 때 일본 정부는 적어도 외부로부터의 자금 유입에 자신감을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코로나19의 대유행 속에서 많은 무리수를 두면서까지 도쿄올림픽 연기를 주저했던 것이 아닐까.

최근 국내에서 2차 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을 두고 적잖은 논란이 있었지만 재정부담의 한계 때문에 선별지원으로 결론이 났다. 이미 결론 난 정책을 왈가왈부할 뜻은 없지만 그 과정에서 기획재정부가 보인 태도에는 앞으로의 정책에 대한 걱정이 일게 한다.

소비의 힘을 너무 가볍게 보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기 때문이다. 1차 재난지원금이 전국민에게 지급됨으로써 소상공인들의 생산활동에 숨통이 트였다는 점을 뻔히 보고서도 오랜 기간 기업지원 위주의 경제정책을 펼쳐왔던 기재부 관료들의 관행적 사고는 생산자 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 국민 재난지원금은 사용시한이 정해진 카드지급방식 덕분이기도 하지만 곧바로 소비를 활성화시켰다. 그러나 막대한 기업지원 자금으로 높아진 유동성에도 불구하고 그 부문에서는 생산 활동이 당장 크게 일어나지 않고 있다. 위기 속에서 여유있는 자는 돈을 끌어안고 다급한 자는 당장 돈을 쓴다.

소비 촉진을 위한 재난지원금은 실상 경제에서 보자면 실신 직전의 환자에게 투약되는 앰플주사와 마찬가지다. 위독한 상황을 모면하는 반짝효과가 결국 수명을 연장시키며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참혹한 전화가 휩쓸고 지나가 초토화된 사회에서도 산업의 싹이 빠르게 자라날 수 있는 것은 소비가 꾸준히 살아있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 전염병 확산은 실상 전쟁 상황이나 다름없다. 많은 국민의 생명의 위태로움은 물론 경제적 타격 또한 그 못지않음을 지금 우리는 목격하고 있다.

한국은 효율적인 방역대책과 적기에 공급된 재난지원금 덕분에 다른 나라들보다 상대적으로 양호한 편이라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심각한 경제 위축을 경험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보면 올 한해 심한 나라는 20% 이상의 마이너스 성장이 예고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런 긴급 상황에 평시의 경제이론은 힘을 잃는다. 전시에는 그에 맞는 처방이 필요하며 그때의 진정한 힘은 생산력에 앞선 소비력으로부터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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