걱정 많은 금융소비자의 독백
걱정 많은 금융소비자의 독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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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분리 완화는 이제 속도의 문제만 남은 모양이다. 금융은 ‘시장원리’에 맞게 빠르게 변화할 것이라고도 한다. 그 시장원리가 보는 각도에 따라 그럴싸하기도 할 터이나 참으로 귀에 코에 멋대로 걸고 부르는 이름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어수선해 보이며 마치 시끌벅적한 장터에서 호주머니 털릴 것 같은 불안이 스멀스멀 일어난다.
외환위기 이후 빈사상태의 국가경제를 지탱하기 위해 공적자금을 뭉텅이로 투입하다보니 때로는 과다한 투자에 비해 효율성이 낮은 부분도 있었을 터이지만 어떻든 공적자금을 과다하게 사용했다고 해서 그간 말들도 참 많았다. 의사들이 중환자실에서 내일을 장담하지 못하는 환자에게는 어지간히 아파도 평소 같으면 각종 부작용을 우려해 섣불리 쓰지 않는 약이라도 모조리 투약해 일단은 환자를 살려내고 본다. 그리고 나타나는 부작용은 일단 살아난 후에 단계별로 치료해나간다. 외환위기를 겪으며 처방된 경제정책들도 대개는 그런 극단적 치료행위였다. 그러나 살아나고 나니 불평도 참 많았던 거다.
그런데 이번엔 신용불량자들을 그런 방식으로 구제할 모양이다. 물론 규모는 공적자금에 비해 적다지만 형태면에선 유사하다. 사회적 취약분야를 되살려내려니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리라 이해할 수 있다. 그렇더라도 앞서의 공적자금 사용에 그 많은 비판을 앞장서서 가해대던 이들이 내리는 처방으로는 민망하다.
물론 현재 생계형 신용불량자 구제 방침은 뒤돌아서서 구시렁댈망정 누구라 나서서 뚜렷이 문제 제기를 할 분위기는 아닌 듯하다. 살아서는 죽어라 욕해대던 악당이라도 죽고 나면 함부로 욕하지 못하고 안됐다고 동정하는 우리네 여린 심성에 비춰 재기불능에 빠진 신용불량자들을 대량으로 구제한다는 방침을 대놓고 반대하기는 껄끄러워하는 탓이리라.
그렇긴 해도 여전히 개운하질 못하다. 이즈음의 젊은이들 중엔 빚지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이 꽤 많고 신용불량자 가운데는 그런 젊은이들이 또 다수 포함돼 있는 것 같아서다. 지인으로부터 들은 사례 하나를 참고삼아 전해볼까 한다.
어느 젊은 신혼부부가 서울 시내 138.8m²(42평) 아파트에 전세 들며 하는 집수리가 하도 대대적인 공사여서 이웃들의 화제가 됐다고 한다. 게다가 제법 고가의 SUV 자동차를 자가용으로 몰더라는 거다. 이웃들이 처음엔 아마도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돈벌이가 매우 잘되는 젊은이들인가 보다 여기며 신기하게만 바라봤다고 한다. 그런데 알고 보니 그 모든 게 다 빚이더라는 거다. 전세비도 대출을 받았다는 그 젊은이들의 과감한 소비생활을 보며 대개는 중년의 중산층들인 이웃들은 심란한 표정으로 그 신혼부부를 바라볼 수밖에 없는 듯했다.
마침 신용불량자 구제 방침을 이모저모 살피던 필자는 혹여 저들이 저런 소비를 지속하다 신용불량자가 돼도 여전히 생계형 신용불량자의 범주에 드는 게 아닐까 싶은 조금은 삐딱한 의심이 드는 걸 어쩌지 못했다. 신용불량자 구제 방침이 필요한 것은 인정하면서도 선뜻 인수위가 내놓은 방안에 동의하기 어려운 것이 앞서 소개한 젊은 부부와 같은 유형이 아주 드문 사례만은 아닌 성싶어서다.
그러나 신용불량자 구제도 일단은 남의 일이라고 접어둔다 치자. 더 걱정되기는 은행·보험사들의 대부업 진출이다. 은행이 소비자금융 사업에 뛰어든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형태로 운영하겠다는 것인지도 아직 명확한 그림이 완성된 것은 아닌 듯싶어 지레 걱정할 일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제까지의 경험을 불안한 쪽으로 붙여보자면 결국은 시간이 가면서 은행이 대주주로 있는 소비자금융업체가 개인 대출을 전적으로 떠맡고 은행은 투자 쪽으로만 전념하게 되면서 전반적인 금융소비자의 이자부담은 늘어나게 되지 않을까 싶은 걱정이 든다. 몇 년 내에 소비자금융은 폐지하는 은행들이 나타나고 그게 보편화되는 시절을 맞게 될 것 같은 지금의 이 예상이 정녕 기우였으면 좋겠다. 구제된 신용불량자들이 다시 소비자금융의 리스크를 높여 놓는다면 그런 추세에는 더욱 가속도가 붙어 새로운 신용불량자들을 늘려가는 악순환이 오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고만 있어야 하는 건지도 참 모르겠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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