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수委의 '뒤지개'
인수委의 '뒤지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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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나게 헤집고 다니는 인수위의 작금의 행보에 금융권의 지금 심정이 진정 어떠할지 궁금하다. 모두 다 같은 심정이기야 할까마는 그래도 대체로 후련하게 반긴다거나 혹은 여전히 조마조마하다거나 뭐 비슷한 기분들은 공유할 터인데 여러 사안이 조금씩은 복잡한 반응을 띨 법도 하다.
전국을 다시 한 번 크게 들었다 놓을 대운하 건설 문제라든가, 대학들이 소원 성취할 모양인 교육부 문제라든가, 취득세 등록세 등 부동산 거래세 인하를 서두르는 일 등 많고 많은 이슈를 다 들먹이기에는 지면이 좁다. 물론 부동산을 부추길 경우 증권시장이 즉각적인 영향을 받으니 금융권과 관련 없다 말하기는 좀 뭣하겠다. 이미 증시가 연초부터 죽 쑤고 있는 것도 그런 영향 아니라 말하기 어려운 실정인데 여기서 더 규제완화 움직임이 나타나다간 주가지수가 몇 년 전으로 물러나기도 일이 아닐 성싶다. 부동산시장 규제가 워낙 강해 마지못해 증권시장까지 흘러들어온 자금들이 웬만한지 현재로선 제대로 파악도 안 되니 그 영향이 얼마나 될지 누구도 장담할 형편은 못돼 보인다.
그러나 아직은 진행 중인 일들이니 저마다 나서서 이러쿵저러쿵 할 단계는 아닐 성싶다. 그저 금융과 이러저러 관련된 사안들만 해도 다 짚어보기는 쉽지 않으니 생각나는 대로 주워섬겨보자.
작은 정부를 강조해온 차기 정부이니 공기업 통·폐합이 거론되는 일은 당연히 그럴 법하다. 그 가운데는 이미 선거기간 중에 거론됐던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의 민영화에 가속도가 붙을 것이 자명해 보인다. 공적자금이 투입됐던 우리은행도 여타 지원 기업들과 마찬가지로 민영화를 서두를 것으로 다들 전망한다.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 등의 통·폐합 수준의 구조조정도 거론된다고 한다.
한편에서는 산업자금의 금융산업 진입장벽을 당장이라도 완전히 허물 것처럼 말한다. 인수위 발 소식으로는 금감위도 금산분리 완화에 동의했다고도 한다. 재계에서는 공정거래위의 규제 문제도 은근히 들먹인다. 온통 세상이 바뀌었음을 외치는 소리들로 그득하다.
그뿐 아니다. 대중적으로 가장 반응이 빠르게 나타나는 사안은 720만 명이나 되는 신용불량자들을 구제하기 위해 뭔가 화끈한 방안들이 거론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인수위에서 이런저런 앞선 기대와 다양한 반응들에 화들짝 놀란 듯 손사래를 치며 원리금 탕감은 아니다, 초기자금 7천억 원이면 될 것이라는 등 즉각적인 진화 발언이 나왔다. 그러나 도덕적 해이의 우려를 무릅쓰고 연체기록 삭제를 통해 신용불량자들의 재기를 돕겠다고 했다. 애써서 신용을 지켜온 개개인들의 마뜩찮은 시선을 받기는 매한가지일 성싶다.
어쨌거나 민생정권을 내세우는 차기 정권 입장에서 경제 각 분야별로 돌아가며 들었다 놓기를 거듭하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어쩐지 인수위의 걸음걸이에서 나는 바람소리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논리적으로는, 혹은 주장하는 당위로는 그럴싸하게 포장해 보여주는 데도 어딘지 선뜻 박수치며 환호하기에 꺼림칙한 구석들이 적잖다. 마치 정조 임금 사후 다시 집권한 노론 벽파의 판 뒤집기를 재연해 보는 듯하다. 그래서 수레바퀴가 되돌려지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정조 시대의 대표적 개혁의 하나가 시전상인들의 독과점 폐해를 혁파해 소상공인들을 통한 상공업 유통을 활성화시키고 농업생산력을 크게 증가시켰다는 점이다. 그로써 비로소 조선에 자본주의의 맹아가 싹트기 시작했다고 주장하는 경제학자들이 많다. 그리고 새롭게 부상한 사상들의 독과점 행위도 엄격히 규제함으로써 공정거래의 질서를 세웠다.
그러나 그 같은 개혁으로 시전상인들과 결탁해 획득해온 정치자금 줄이 끊긴 노론세력은  정조 사후 수렴청정에 나선 정순대비를 업고 재집권하며 그간의 개혁정책을 대부분 되돌려놓았다. 유럽에 앞선 문명을 향유하던 조선은 그 이후 급격히 쇠락하며 세계사의 레일에서 탈락, 마침내 외세의 식민지로 전락하며 왕조를 마감했다. 그때가 자꾸 떠올라 심란하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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