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권하는 송년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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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마다 연말이면 많은 이들이 한번씩 지난 한해를 돌아보며 새로운 해를 어떻게 맞을 것인지 생각해보곤 한다. 아마도 내년이면 시장 환경의 큰 변화를 기대하는 경제부문, 금융업 종사자들 역시 올해와 달라질 내년을 살피기에 분주한 세밑이였을 터이다.
그런 중에 어느 개인 블로그에서 2007년 한해 미디어를 통해 추천된 도서들을 한데 모아 소개하는 것을 보며 새삼스러웠다. 특히나 2007년 소개된 책들 중 예년에 비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분야가 역사, 새롭게 해석해보는 역사 관련 서적들, 특히 대중성을 감안해 소프트하게 접근한 역사 에세이들이 아니었나 싶다.
마침 그 블로그의 노고를 만난 소회를 담아 색다른 맛이 나는 역사 관련 서적 한권을 꺼내 정치권이든 금융권이든 경제 관계자들에게 권해보고 싶은 욕심이 든다.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이라는 제목의 이 책은 우리가 우리 역사를 얼마나 단편적으로 알아왔던가 새삼 느끼게 한다. 그와 동시에 한미FTA로 전국이 홍역을 앓던 시절을 넘고 이제 본격적인 신자유주의 정권의 출현이라는 이명박 정권이 들어설 2008년을 앞둔 시점에 몇 백 년 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사회의 고민은 늘 고만고만했음을 자각하게 만든다는 점도 이 책을 권하고 싶게 하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경제학이라면 으레 유럽에서 시작된 것으로 알고 중상주의 중농주의 등 당대를 풍미한 경제사조들을 역사책을 통해 달달 외워야 했던 기억들이 누구에게나 남아있을 것이다. 그런데 이 책은 우리가 뻔히 다 아는 조선 중·후기 인물들을 통해 그들이 주장해온 경제이론들을 새롭게 보라고 권한다. 유럽에서 중농주의와 중상주의가 정책적 선택을 놓고 다투고 있던 같은 시대에 조선에 살았던 이 13인의 입장 또한 그들과 같은 논리로 대립해왔음을 밝혀주고 있는 것이다.
조선 최고의 관료 경제 이론가 김육, 시장과 상업 활동의 자유를 옹호한 관료 경제학자 채제공, 조선 유일의 여성 실학자이자 경제학자 빙허각 이씨, 지리경제학의 개척자 이중환, 중상주의 학파의 브레인 박제가, 중농주의 경제학의 대부 유형원, 중상주의 학파의 개척자 유수원, 18세기 조선 실학과 경제학의 거두 이익, 양반 사대부 출신의 대상인 이지함, 북학과 중상주의 경제학의 리더 박지원, 농업과 일상의 경제학을 완성한 학자 서유구, 중농주의 경제학을 집대성한 학자 정약용, 근대 개화파 경제학의 창시자 박규수 등으로 13인을 소개한 저자의 시각이 매우 참신하다. 그리고 그 내용을 읽어가다 보면 새삼스럽게 왜 우리는 근대화의 레일에 오르는 데 실패했는지 더욱 궁금해지곤 한다.
특히 17세기부터 19세기까지 이 13인의 경제학자들은 중농주의적 입장이든 중상주의적 입장이든 그 차이를 떠나 저마다 그 시대적 상황에 맞는 이론을 세우기 위해 노력한 점이 그 무엇보다 눈길을 끈다. 중농주의적 입장에서 토지 공유와 경자유전의 원리를 합리적으로 논증해낸 정약용과 통상 개화를 통한 자주적 부국의 길을 밝힌 박규수, 그들의 주장은 오늘날도 조금씩 내용만 바뀌었을 뿐 여전히 우리 안에서 대립항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점 역시 우리들 생각의 끈을 잡아끈다.
그와 아울러 지금 우리는 우리 역사 속의 경험들을 너무 가볍게 던져버리고 남의 경험 위에 우리의 건물을 지어 올리려는 조급한 욕심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닌지, 이런 무모한 실험을 마냥 계속해도 좋은 것인지 다시금 생각해보게 만든다. 남이 규정한 것에 나를 맞추는 것으로 그 좋아하는 1류, 나아가 최고가 될 수 있을까.
이제 내년부터 한국 사회는 고도성장의 판타지를 재현하기 위한 새로운 실험에 돌입할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의 이미지 자체가 곧 성장 신화의 영웅적 주인공이었고 차기 정권을 향한 유권자들의 선택 역시 그것이었으니 달리 갈 것이라 여길 그 무엇도 없다.
성장 자체가 나쁠 까닭은 없다. 다만 그 그늘이 너무 짙어질 때 대중의 환상이 깨어져 나갈 수 있음을 우리 역사 속에서 깨우쳤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소박하게 책 한권을 건넨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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