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열린 시장, 춤추는 금리
문 열린 시장, 춤추는 금리
  • 홍승희
  • 승인 2003.08.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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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국내 증시는 외국인 거래동향에 의해 춤춘다. 그 영향의 정도는 상장주식 총 시가총액의 37.5%가 외국인 차지라는 숫자로도 가늠된다. 덕분에 국내로 드나드는 외국인 자금규모도 커져 올해들어 1/4분기, 2/4분기 거푸 외화거래 규모가 100억 달러를 상회하고 있다.
외국인 매수세에 의해 증시가 숨쉬는 것은 산업동력이 약화된 경제시스템에서 그나마 다행이라고 해야 할 일이다. 하지만 단기 이익을 겨냥해 드나드는 외국인 매수`매도 동향에 시장이 지배받는다는 것은 불안정성이 너무 커 위태롭게도 보인다.
지나치게 안정적인 시장은 생동감이 없다. 성장하는 시장일수록 불안정성이 높다. 그러나 지나치게 요동치는 시장은 참여자들을 극도의 흥분상태로 몰아가며 불안정성을 정도 이상으로 높일 가능성이 크다.
한국경제의 고도성장기에 이런 장세가 나타났다면 그다지 걱정할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산업성장이 밑바탕에 있고 증시가 빠른 속도로 움직인다면 그건 말 그대로 시장의 활력을 반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고도성장의 시대는 지났다. 정부가 제아무리 1인당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라는 성장비전을 제시한다 해도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을 기대하기는 무리다. 가능하지도 않을 뿐만 아니라 바람직하지도 않다. 이미 한국경제는 청년기의 막바지, 장년기로 넘어가는 길목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 시장에서 청소년기의 흥분상태가 재연된다는 것은 경제체질의 약화만 초래할 뿐이다.
물론 이런 시장의 불안정성이 한국만의 특수성은 아니다. 현재 미국시장의 실세금리도 그 변동폭이 매우 크다고 한다. 최근 미국의 장기 금리 급등락 수준을 보자면 아직 한국 금융시장은 그런대로 안정세라고 봐도 될 듯하다.
지난 6월말 10년만기 미 재무부 채권 수익률은 45년만의 최저치인 3.1%를 기록했으나 불과 6주만인 지난 11일 기준 채권수익률은 4.38%에 달했다고 한다. 채권가격이 불과 6주만에 40% 이상 떨어진 셈이다.
이처럼 큰 등락폭을 두고 경기회복 기대감 때문이라는 해석도 나오지만 불과 10년전만 해도 그만한 폭으로 채권가격 변동하는데 6개월 이상 걸렸다는 점을 감안하면 설명이 충분치 않아 보인다. 한편에서는 그동안 채권가격이 버블을 우려할 만큼 고평가됐었다는 주장도 있고 연준의 금리인하폭이 기대에 못미쳐 실망한 투자자들의 이탈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재정적자 확대와 그로 인한 국채 발행물량 증가도 한 요인으로 지적된다.
어떤 이유이든 하나의 핵심적 요인을 들자면 현재의 경제시스템, 산업시스템에 대한 시장의 신뢰는 낮고 대중들은 소비여력이 소진된 상태라는 점을 우선 꼽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소비위축은 불가피할 것이고 이는 경기회복 지연으로 이어질 것이다.
물론 미국 경제를 보는 전문가들은 이 정도의 금리 수준이 미국 경제의 성장을 가로막지는 않을 것으로 보는 경향이다. 또 추가적인 금리 상승 가능성도 낮게 보는 이들이 대세를 이룬다. 인플레 압력이 낮다는 것이 그 주된 요인인 듯하다. 또하나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아시아 각국이 자국통화 절상 압력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미국채 매입에 나서고 있다는 것도 채권금리 추가 상승 가능성을 희석시키고 있다.
미국은 그렇다 하고 그런 미국시장의 영향을 거의 거름장치없이 곧장 받고 있는 국내 금융시장이 문제다. 미국 경제는 종합적인 국력의 뒷받침을 받고 있지만 한국은 기본적으로 덩치도 작고 허약한 체질을 갖고 있다. 시체말로 강한 국력을 배경으로 밀어부치는 미국 경제와 맞장 뜰 처지가 아닐 뿐만 아니라 흉내조차 낼 처지가 아니라는 얘기다.
더구나 지금 병후 회복기에 놓인 한국경제는 그야말로 유리그릇 다루듯 조심스럽게 체질보강에 나서야 하는데 아직 경제의 기초체력을 이루는 제조업이 방향을 못잡고 헤매고 있는 형편에서 처지를 잊고 무리하면 곤란하다. 금융시장은 결국 제조업이라는 기초체력의 뒷받침없이 성장하다가 버블만 일으키고 주저앉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금융시장에 대한 조급한 기대는 이래저래 위험하다. 지금 한국경제는 회복기 환자의 인내심이 요구되는 단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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