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경제 재채기 시작하다
미국경제 재채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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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간혹 이웃 나라와 관계가 불편해거나 하면 곧잘 그놈의 나라 망하지도 않냐고 저주성 욕을 퍼붓기도 한다. 안방 대장, 식구들 들볶듯 인터넷 세상에서도 특히 한글 사이트에 그런 욕설들이 들끓곤 한다.

저주를 퍼붓는다고 실제 그런 일이 벌어질 리도 없지만 만약 그 괘씸한 이웃나라가 일순간에 망해버리는 일이 현실에서 발생한다면 우리도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를 형편은 못될 것이다. 욕이나 저주라는 게 워낙 감정이 극에 달해 이성을 잠시 마비시켜두고 있는 한껏 화를 내는 행위일 터이니 앞뒤 재가면서 말 골라가면서 할 리는 없으니 그저 화풀이 한번 하는 수준이라 다행인 게다.

FRB, 즉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버냉키 의장이 엊그제 미국 경제가 직면한 위기를 상하양원 합동경제위원회에서 공개적으로 밝혀 관심을 모았다. 내용이야 새삼스러운 건 없다. 이미 그동안 우리 눈으로 들여다 본대로 미국 경제가 신용경색 위기에도 불구하고 복원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긍정적 분석과 아울러 하지만 성장과 인플레이션이라는 두 가지 위기에 직면했다고 밝힌 것뿐이다.

그런데 국제정치, 군사, 경제, 문화까지 모든 영역을 아우르는 명실상부한 현존 유일 제국 미국이 성장과 인플레이션 위기에 직면하면 세계경제가 함께 몸살을 앓을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단순하게 들어 넘길 수가 없다. 특히나 수출경제 없이 존재 자체가 불가능한 구조를 지닌 한국 입장에선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다. 미국이 위기라면 우리가 덩달아 비상이 걸릴 수밖에 없는 형편인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한·미 두 나라만의 관계가 그렇다하면 이제 한국경제도 많이 커지고 발도 넓어졌으니 다른 시장 비중을 늘리면 된다고 간단히 말하겠는데 전 세계가 함께 앓게 되니 난감하다.

그러니 미국을 좋아하고 말고를 떠나 미국경제가 급격히 기우뚱하는 일이 없게 각국이 이미 기울어버린 기둥을 대신해 버팀목을 대주며 버티곤 한다. 미국의 구심력도 차츰 약화돼 가는 것은 불가피할 것이고 그걸 근본적으로 막아줄 나라도 없을 터이다.

혹 모르겠다. 블랙코미디 한자락 하자면 임진왜란 이후 망해가던, 그리고 망해버린 명나라의 은혜를 노래하며 백성을 볼모삼고 온 나라를 벼랑 끝까지 몰아가던 소중화주의의 망령이 아직도 떠돌아 ‘은혜로운 미국’을 찬미하는 세력이 엄존하는 대한민국이 미친 듯 온몸을 던져 미국의 위기를 막아주자고 나서지나 않을지.

성세를 누리면 또한 쇠락기가 오는 것은 우주·자연의 법칙이며 인간세상 역시 그 법칙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다. 그리고 지금 미국 경제는 그 힘이 예전에 비해 현저히 딸리는 데도 불구하고 왕성하던 시절의 허세를 유지하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역력하다. 그렇게 미국이 기울어져 간다 해도 역시 아직은 세계경제의 중심축이다. 하나의 고리에 꿰인 세계경제는 미국의 신음소리에 함께 잠을 설칠 수밖에 없다.

역사 속에서 보자면 거대한 세력이 벌떡 일어서면 주변세력들은 밀리고 밀리며 민족 대이동이 발생했다. 혈연적, 인종적 공동체 사회끼리 부딪칠수록 그런 현상은 더 심할 수밖에 없다. 고대에서 중세에 이르기까지 몽골 평원에서 중앙아시아에 이르는 북방 초원지대는 그런 세력의 밀고 밀리는 모습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며 동아시아와 유럽의 역사 판도에 큰 영향을 미치곤 했다.

특히나 이제 세계는 단일한 요소, 유가든 환율이든 같은 원인으로 함께 몸져누울 수도 있다. 그래서 미운 놈 고운 놈 가릴 것 없이 서로의 협력이 긴요하다. 지금 추세대로 간다면 올 연말부터 내년 상반기까지는 특히나 전 세계의 긴밀한 협력이 절실한 시기가 닥쳐오는 듯하다. 더욱이 그간 세계사의 흐름에 수동적으로만 대응해온 한국도 덩치가 커지고 역할이 커졌다. 스스로 맡아야 할 역할을 제대로 파악하고 충분한 대비를 해둘 일이다. 그런데 지금 심정은 매사가 처음 겪는 일이라 미덥지 않은 사춘기 자식을 보는 부모의 마음이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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