現大 '겹경사', 국민에 대한 빚
現大 '겹경사', 국민에 대한 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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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양우 기자]<sun@seoulfn.com>'現大(차)'에 '겹경사'가 났다. 6일엔 정몽구 그룹회장이 법원으로부터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났고, 그 바로 하루 전엔 노사양측이 10년만의 무분규 타결이라는, 전례드문 합의를 일구어 냈으니 '겹경사'라는 말이 모자랄 정도다. 이날 정몽구 회장에 대한 법원의 판결은 어찌보면 이례적인 게 아닐지도 모른다. 과거 재벌 총수들이 대부분 중한 경제범죄임에도 집행유예로 풀려난 예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몽구 회장 재판의 쟁점은 당초부터 유·무죄가 아닌 양형에 쏠려 있었다. 1심에서 징역 3년 실형이 선고된 상황에서 항소심 재판부의 선택은 실형을 선고하고 법정구속을 하느냐, 집행유예를 선고하느냐 두 가지 중 하나였고, 결국, 법원은 고심끝에 집행유예를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눈길을 끄는 것은 그같은 판결의 논리적 근거다. "재산이 많은 사람은 재산으로 사회에 공헌하면 된다." 6일 법원이 정 회장에 대한 징역형을 유예해주면서 내세운 논리다. 그러면서, "감옥에 가두는 것이 능사가 아니다"라고 했다. 일종의 '맞춤식 양형'이라는 얘기인데, 달리 말하면, '유전무죄' 논리와 다를 게 없다. 더욱 눈길을 끄는 것은 재판부가 정 회장에게 2013년까지 8400억원을 출연해 저소득층을 위한 문화시설을 건립하고 환경보전 사업을 하며, 준법경영을 주제로 전경련 회원들에게 2시간 이상 강연을 하고, 일간지에 같은 주제로 기고할 것 등을 명령했다는 점이다. 법원이 이런 내용의 사회봉사 명령을 내린 것은 이례적이다.
대법원 관계자도 "사회봉사 명령이 다양하기는 하지만 이번은 독특하다"며 "기고와 강연, 재산 출연은 처음 본다"고 말했다. 대법원 예규는 자연보호, 복지시설 및 단체 봉사, 공공시설 봉사, 대민 지원, 지역사회에 유익한 공공분야 봉사활동 등을 사회봉사 명령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 때문에 법원이 정 회장한테 내린 사회봉사 명령이 제도의 취지와 어긋난다는 지적이 많다. 익명의 변호사는 "사회봉사 명령은 범죄자한테 육체적인 노동을 통해 잘못을 뉘우치고 봉사하도록 하는 제도"라며 "돈 많은 사람한테 돈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은 본래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또 법정에서 재판부의 심문에 제대로 답변을 하지 못할 정도로 어눌했다. 이런 정 회장에게 강의라는 봉사명령을 내린 법원의 판결을 의아스러워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신문기고, 강연 등 판사들도 처음보는 이상한 사회봉사명령'이라고 노골적으로 비판한 신문도 눈에 띈다. 그래서, 여러번 반복되다 보니 이제 유전무죄도 진화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마저 든다. 아무튼, 이번 판결로 사법부는 다시 한번 '재벌 앞에 고개 숙인 법원'이라는 비난을 면키 어렵게 됐고, 언제부터인가 자주들리던 '화이트 칼러 범죄엄단'이라는 말도 무색해졌다. 각설하고… 바로 하루전, 현대차 노사는 10년만에 무분규 타결을 일구어 냈다. 그날, 가장 기뻐한 사람들은 다름아닌 현대차가 자리잡고 있는 울산의 시민들이었다. 오죽했으면, 점심을 공짜로 제공하고, 맨 정신에 술을 돈도 안받고 대접하는 그림이 공중파 TV의 화면을 장식했을까. 그러나, 총수의 법정판결을 하루 앞둔 이날 현대차 노조의 '합의'가 그렇게 값진 것이 었을까? 다음날 정 회장의 판결을 염두에 둔 사측이 지나치게 양보했다는 말이 공공연히 들렸고, 이를 뒷받침이라도 하듯 일부 언론에서는 노측의 일방적인 승리임을 입증하는 수치화된 임금인상 내역을 기사화하기도 했다. 그만한 비용이 수반된 이유있는 '합의'였던 셈이다. 그래서, 현대의 겹경사는 '사회적 법정의 훼손'과 '사회적 비용'이라는 두가지 값비싼 댓가를 치른 '現大人'들만의 경사라는 제한적 의미를 지닐 수 밖에 없게 됐다. 현대는 그렇게 국민들에게 빚을 진 것이다. 그것도 두고 두고 갚아야할 큰 빚을.

 
이양우 기자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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