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정책 청사진이 궁금하다
금리정책 청사진이 궁금하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어느 나라든 제도금융의 울타리를 벗어난 지하금융은 있다고 한다. 또 그 규모나 자본수익률 등에서 격차는 매우 큰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한국 사회에서 지하금융이라는 말은 사라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 시중 유동성이라는 가치중립적인 표현이 등장했다. 90년대 초였던가, 어느 금융정책 당국자는 모든 시중 자금은 금융기관을 경유하게 돼 있기 때문에 지하금융이란 게 별도로 있을 리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 시중 유동성이란 말 속에 껴묻혀 들어간 제도 밖 금융자본들이 여전히 한국사회를 휘젓고 있다.

대부업을 양성화시킨 것은 분명 정책적 통제 밖의 자금이 만만찮음을 정책당국이 인정했기 때문일 게다. 그런데 제도 안으로 들어섰다고는 하지만 아직 두 발을 완전히 들여놓았는지 끊임없이 의심받고 있는 대부업체 중 일부는 그런 인식에 동조하듯 비공식적 자리에선 금리 인하 권고가 지나치거나 양질의 자금 공급을 규제한다면 제도권 이탈을 고려할 수 있다는 식의 불만을 터트리는 일도 있다고 들었다. 여전히 제도권 밖에서의 사금융 시장이 존재하고 있기에 그런 식의 불평이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런 불만에도 불구하고 요즘 대부업체들의 대출 금리가 상당히 낮아지는 추세인 듯하다. 지상파 방송을 벗어나면 최고 금리를 50% 이하로 낮췄음을 강조하는 대부업체 광고들이 활발하게 등장한다. 물론 많은 수의 대부업체 중 케이블이나 위성방송 등에 광고하는 대부업체들은 극히 소수라 전체적 현상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전반적인 금리 인하 경쟁이 시작된 것으로 봐서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그렇다 해도 대부업체들의 대출 금리는 여타 제도권 금리들에 비해 월등히 높다. 은행이나 저축은행들이 수용하지 못하는 금융수요가 그만큼 많다는 의미이기도 하지만 지금 정책당국의 금리정책이 매우 귀족주의적 발상 위에 입안되고 펼쳐지는 것은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명색이 같은 제도금융권 내인데 금리 차이가 10배, 요즘 줄어들었다지만 여전히 7~8배나 발생한다면 그 제도가 제도로서 효용성이 있다고 믿어도 될는지 궁금하다. 게다가 그 대부업체들마저 감당하지 못하는 최하위 취약계층들이 있다. 기댈 데 없는 그들에게는 여전히 제도권 바깥을 장악하고 있는 돈들이 종종 검은 세력들과 결탁, 위험한 거래조건을 내걸어 옥죄고 있다는 사실이 가끔 형사적 사건화 된 후에야 국민들 앞에 드러나기도 한다.

당국이 인정을 하건 말건 제도적으로 관리, 통제되지 않는 지하자금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지금 한국의 지하금융 규모가 얼마인지는 정책당국이나 금융전문가는 물론 장삼이사들까지 저마다 상상 가능한 범위 내에서 더듬어 아는 체 하는 정도일 뿐 명확히 알 수는 없다.
이 최악의 금융시장은 실상 완전히 사라지기 어려운 속성을 지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는 작을수록 좋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고 있다. 그러자면 금융정책은 다양한 계층적 수요를 어떻게 모두 수용하고 갈 것인지에 대해 더 많은 고민을 해야 마땅하다.

단순히 제도권 안으로 들어오라고 유인해놓고 쥐V잡듯 잡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이미 무진회사를 통해 사금융을 양성화했었고 지금은 사라진 단기자금회사들도 그렇게 제도권에 들어왔었으며 이제 대부업체들도 들어왔다. 그러나 여전히 제도 바깥으로는 자금들이 꾄다. 고금리를 취하려는 사채업자와 그런 자금이나마 목을 축이려 덤비는 다급한 이들이 있다.

그러니 금융정책은 최상위 소수자를 위한 명품 금융 뿐 아니라 다수의 중간층을 위한 중급 금융, 하위 계층을 위한 금융까지 층위별 다양화를 꾀해야 마땅하다. 이런 방식의 정책을 계층간 위화감을 줄이며 모든 계층을 함께 아우를 수 있게 마련해야 한다. 이런 금융정책의 청사진 위에서 금리도 검토되고 결정되는 것이 옳다.
 
아무리 수출로 먹고 사는 대한민국, 한두 개 대기업들의 실적에 따라 GNP GDP가 오르내리고 그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대한민국이라지만 그들만 있어 대한민국이 존립할 수는 없는 일이 아닌가.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