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희한한 대선전 양상
<홍승희 칼럼>희한한 대선전 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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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경제는 1류인데 정치는 3류라는 식으로 한국 정치를 폄하하는 발언들이 그동안 끊이질 않았다. 더욱이 대통령선거의 해인 올해 들어서는 정치판이 그 어느 때보다 끓는 죽 단지처럼 혼돈 속을 헤매며 정치를 보는 경멸어린 표현들이 난무한다.

집권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간판만 아직 남았다 뿐 이미 몸통은 형해화 된 상태다. 그리고 뛰쳐나간 이들이나 당적을 아직 지닌 이들이나 또 민주당과의 통합을 외치는 이들까지 모두 어울어지는 소위 '범여권'이라는 이름의 정치마당에 몰려들어 저마다 이합집산의 본산이 되기를 자처하며 혼돈을 가중시키고 있다. 선거까지 4개월 남은 대선을 앞두고 여전히 재집권의 가능성을 내세운 짝짓기가 한창이지만 아직 성과가 나타나질 않아 과연 때맞춘 출산은 그만두고 배란이나 되려나 싶다.

이번 선거에 관한 언론의 관심은 진작부터 여당을 완전히 압도해버린 제1야당 한나라당으로 집중돼 있다. 그런 언론의 관심도가 곧 대중의 지지도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어지간한 편향성을 감안하더라도 대체적 기류가 그리 흐르고 있음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듯하다.

이미 한나라당의 집권은 기정사실이 된지 오래인 언론이다 보니 한나라당 대선후보 선출을 위한 선거가 곧 대통령선거인양 신바람이 여간 아니다. 양측 후보간 치열한 공방전 또한 여느 대통령선거전 못지않다. 당내에서 과열을 염려하는 소리들이 나오든 말든 잠시 주춤하다가는 또 다시 과열되고 마는 양진영의 싸움이 어지간해서는 언론의 시선을 후줄근해진 여당 쪽으로는 돌리기 어렵게도 한다. 그리 보면 양진영의 성공적인 합심 전략인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 이런 정치권의 혼돈을 다루는 언론의 태도는 치열한 선거전 이상으로 재미있다. 범여권의 행보는 대책없이 죽을 쑤는 행사들로 중계되지 않으면 소홀하게 취급되고 만다. 그리고 한나라당의 이명박·박근혜 두 후보간 공방을 두고는 짐짓 과열이 우려되는 양 훈수 두기를 즐긴다. 그러면서 연일 정치적 포커스를 두 후보의 공방에 맞춘다.

언론이 늘 머릿기사로 그런 공방들만을 다루다보니 먹고살기 바쁜 서민들로선 정치 기사만 보고 들어도 멀미가 날 지경이다. 어떻든 언론의 그 집요한 노력의 결과 평소 정치에 무관심하던 국민들마저도 최소한 이명박, 박근혜 두 후보의 이름만큼은 기억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으니, 그 가공할 미디어의 힘에 감탄할 따름이다.

그 두 예비후보의 이름만 간신히 기억할만큼 국민들의 관심은 극히 저조한 데 지금 대통령이 되겠다고 나선 예비후보들은 수십 명에 이른다고도 한다. 물론 그들이 모두 대선에 다 출마할 수는 없을 게다. 처음부터 대선 출마를 목표로 삼지 않은 예비후보가 훨씬 많을 터이지만 그래도 국민적 무관심과는 매우 대조를 보인다.

이런 대선 국면을 보다 문득 미국 침공 이후 첫 이라크 선거의 광경이 떠오른다. 숱하게 많은 대통령 후보들이 난립하는 광경은 비단 이라크에서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다. 신생 독립국이나 최초의 민주적 선거를 치르는 나라, 오랜 독재의 터널을 지나 모처럼 자유로운 선거를 치르는 사회가 모두 다양한 후보들의 경연장이 되곤 한다. 그만큼 사회 변혁을 향한 개개인의 열망이 뜨겁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린 그런 신생독립국이라고 하기에는 그간 치러낸 선거가 매우 많은 편이다. 독재의 긴 터널을 통과하고도 이미 세 번(공식적으로는 네 번이지만 여전히 군부정권의 연장선상에 있었던 노태우 정권의 탄생은 온전한 선거로 인정하고 싶지 않은 필자의 개인적 소견으로 빼고)의 선거를 더 치렀다.

그런데도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예비후보들이 나섰다 하고 국민들은 그들 누구도 기억하려 하지 않는 기묘한 선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런 출마 열기를 청년 대한민국의 패기로 읽어야 할까, 아니면 한 두 송이 중심 꽃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자디잔 꽃무더기들을 그 아래쪽에 소복이 꽂아두는 모양새로 미루어 누군가가 연출해 보여주는 꽃꽂이의 기예로 읽어야 하는 걸까 똑떨어지는 결론을 내기에 어려움을 느낀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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