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수법의 '앞지르기'
범죄수법의 '앞지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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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제된 신용카드로 현금인출 사기를 벌인 것으로 보이는 사건이 최근 잇달아 발생했다고 한다. 카드 이용자든 발생기관이든 모두가 신경을 곤두세울만한 일이다.

사건 내막은 카드 주인과 카드는 부산에 있고 현금인출은 경기도의 지하철역사에서 거푸 벌어졌다는 것. 이에 대해 은행으로선 복제된 카드로 현금인출은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사건을 믿을 수 없다는 입장을 보인다고도 한다. 더군다나 현금인출을 하려면 비밀번호를 알고 있어야 하는 데 카드 주인 아닌 낯모를 사람이 몰래 쓴다는 것은 한마디로 ‘말도 안된다’는 주장인 모양이다.

하지만 카드 주인은 가족에게조차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았고 특별히 남들이 유추해 알만한 숫자를 사용하지도 않았다고 주장한다니 듣기에도 황당하다. 더욱이 같은 유형의 사건이 각기 다른 사람들의 카드로 잇달아 발생한다면 카드 주인이 의심받을 가능성은 더욱 낮아지는 일이 아닌가.

그러나 우리는 분명히 기억한다. 5.25인치 프로피 디스크가 사용되던 90년대 초반부터 이미 각종 프로그램의 복제방지를 위한 잠금장치가 아무리 정교하게 개발돼도 단 2~3개월이면 해제장치가 나타나 대량 불법복제가 이루어지곤 하던 일을. 솔직히 그 당시엔 너나없이 불법 복제된 디스크를 사용해 봤던 기억도 아울러 갖고 있을 것이다.

지금 중국이 불법복제의 왕국이 된 것도 따지고 보면 어떤 잠금장치라도 결국은 해독돼 풀리기 위해 개발된다는 말이 나올 만한 기술적 구조에 기인한다. 컴퓨터를 일상 생활용품으로 사용하는 젊은 세대들이 도덕적 훈련이 안 돼 있다면 지금 우리가 누리는 수많은 편의들은 한순간에 재앙으로 돌변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말이 나온 김에 현직 부장판사까지 당했다는 요즘의 극성스러운 전화사기는 거의 중국과 대만에서 한국을 겨냥해 벌어지고 있다. 연전에는 한동안 국제적인 복제 카드 사기에 많은 수의 한국인들이 피해를 입었다. 또 몇 년 전인가는 세력다툼을 벌이던 조직폭력배들이 동남아에까지 나가 서로 폭력을 휘둘러 국가적 망신이라고 혀를 찼던 일도 있다.

인터넷이 전 세계를 단일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로 묶었든 이제는 범죄도 글로벌화하고 있다. 더욱이 정보통신의 발달은 가만히 앉아서 전 세계를 상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 줬고 그 결과 생산적인 효과 못지않게 범죄자들에게까지 날개를 달아준 셈이 됐다.
칼이 발달할수록 방패도 아울러 발달하는 게 세상사의 이치다. 빛이 눈부실수록 그늘은 더욱 짙어진다. 이즈음의 눈부신 기술발전은 결국 범죄의 글로벌화를 촉진시키는 역작용 또한 낳을 수밖에 없다.

더욱이 현대사회는 철저한 익명성의 사회다. 모든 범죄는 단지 ‘이익’만을 겨냥해 불특정 다수에게 가해지며 대상 공간 역시 기술진보의 속도를 앞질러 광역화한다. 한마디로 기술발전 속도가 뛰는 속도면 범죄기술은 그 머리 위를 날아다니는 속도로 발달한다. 그에 비해 그런 범죄를 예방하고 처벌해야 할 법은 걷는 속도를 내기도 어렵다. 법의 제정은 늘 정치와 맞물려 시간을 지체시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3국으로부터 통신망을 이용해 들어오는 금융범죄들을 막을 장치는 거의 없는 것이나 진배없다. 국제적으로 범죄인 인도조약을 체결한 국가의 수도 극히 적다. 유령회사들의 등록을 도맡아 하며 불건전한 자금들의 은신처를 만들어주고 국제적 기업사기도 가능하게 하는 작은 신생국가들도 있다.

그러니 이제 글로벌화 하는 범죄를 예방하자면 1국가 차원의 대응책으로는 어림없다. 1국가 대 국가의 협정 수준으로 펄펄 날아다니는 범죄를 예방하기도 부지하세월이다. 아예 전 세계가 적어도 통신망을 이용한 범죄에 관한 한 단일 법 적용이 가능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그런 시스템 구축을 주도할 국가는 당연히 정보통신 선진국들이어야 한다. 지금 글로벌 범죄의 주 타깃이 돼 있는 한국은 마땅히 국제적 범죄예방 시스템 구축에 앞장서야 한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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