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돈은 창조를 낳는다
혼돈은 창조를 낳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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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에서는 지금 여러 가치들이 서로 주류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갈등하고 있다. 그러다보니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결과가 극명하게 달라질 사안들이 충돌하다가 끝내는 법률적 해석을 구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요 며칠 새에만 해도 대통령이 정치인이냐, 공무원이냐를 우선 가리고 위법 여부를 가려내야 할 선거관리위원회의 결정이 대통령은 공무원이라는 전제로 해서 내려졌다. 그러나 이런 선관위 결정을 정치권이 100% 승복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종합부동산세 부과가 적법하지 않다고 소송을 제기한 건 역시 종부세가 보유세냐, 미실현이익 과세냐는 판단이 선행돼야 하는 사안이었으나 서울행정법원은 보유세로 보고 적법하다고 판단을 내려줬다. 재산세 부과가 합법이듯 종합부동산세도 합법이라는 것이다.

물론 판단하는 입장에 따라 각기 달리 보고 행동하는 문제는 그런 것 외에도 무수히 많다. 한국은행이 콜금리를 거푸 동결하고 그런 한국은행에 대해 현명하지 못한 조치로 보고 불만을 품는 이들도 있다. 모 증권회사에서는 자체 조사한 고객의 보유자산 규모를 보고 그 70%까지를 투자자금으로 빌려 줄테니 투자수익을 분할하자고 제안한다는데 그건 신종 대출인지 아닌지를 법률적으로 가려야 할 시점이 곧 닥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런 소소한 일상의 판단거리 외에 시대적 가치의 문제를 둘러싼 갈등도 지금 우리 사회에는 넘쳐난다. 그만큼 한국사회는 아직 역동적인 젊은 사회라는 의미라고 긍정적으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생동하는 사회일수록 그 사회는 늘 새로운 가치의 문제가 대두되고 그 가치의 문제를 둘러싸고 서로의 이해에 맞춰 대립하는 세력들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혼돈의 끝에 창조가 이루어지는 우주적 질서는 인간사회에도 적용되는 법칙이다. 그런 만큼 가치의 갈등이 첨예한 사회일수록 창조적 발전의 가능성 또한 크다. 갈등이 가지는 생산성을 소중히 여길 때 사회는 더욱 앞으로 큰 한걸음을 내디딜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매사를 이렇게 다 법률적 판단에만 의존하는 일이 과연 바람직할까 하는 점이다. 정해진 법률의 틀 안에서 판단하는 일은 당연히 사법부가 가릴 일이다. 그러나 새로운 가치가 끊임없이 창출되는 사회에서 그런 가치의 문제를 일일이 사법부가 기존 법의 틀을 들이대고 재단하게 한다면 그 사회는 창조성을 잃고 화석화되고 만다.
지금 한국의 사법부가 그런 퇴행적 역할을 하고 있다는 주장은 아니다. 사법부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음은 가시적으로도 확인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법률은 과거지향성을 가지며 창조성이란 늘 미래지향적이어서 충돌이 불가피하다는 점에서 모든 갈등을 법에 의존해 풀려는 노력은 사회적 에너지를 갉아먹을 위험이 있다. 이처럼 과거지향적 법과 미래지향적 창조적 가치의 충돌로 인해 발생한 역사상의 크고 작은 사건들은 무수히 많다. 그리고 단기적으로는 법에 의존한 기존 가치가 이기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끝내는 새로운 가치들이 기존 가치의 영역을 장악해가며 인류의 역사가 진전돼 왔다.

최근 몇 년 우리 사회의 여러 현상들을 혼란과 혼돈상태로 바라보는 시선들이 많다. 그만큼 새로운 가치들이 끊임없이 출몰하며 좌충우돌 충돌을 거듭했다. 그 속에서 대다수의 시민들은 사안별로 종종 판단의 어려움에 직면하곤 했다.

이런 우리 사회에 필요한 덕목은 모든 살아있는 사회는 끊임없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또 그런 만큼 갈등이 계속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인정하는 일이다. 정치적 갈등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장 객관적일 성싶은 과학의 세계에도 가치의 충돌로 인한 발전의 지체는 무수히 많았다.
 
그런 갈등이 곧 사회적 에너지라고 받아들이면 지금 부동산시장에서 밀려 증권시장으로 들어간 자금들도 진즉에 확실한 생산자금으로 전환돼 훨씬 큰 부가가치를 냈을 수 있었을 것이다.
 
홍승희 서울파이낸스 주필 <빠르고 깊이 있는 금융경제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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