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초대형IB, 亞지역화 위해 최소 10兆 필요"
[인터뷰] "초대형IB, 亞지역화 위해 최소 10兆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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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 (사진 = 자본시장연구원)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

[서울파이낸스 차민영기자] "정부의 초대형 투자은행(IB) 육성방안에 담긴 함의를 이해하기 위해선 기업금융(IBD) 업무의 본질에 대한 고찰이 선행돼야 한다."

한국에서 자기자본 7조원의 증권사가 이렇게 빨리 탄생하리라 상상이나 했을까. 자기자본에 따라 단계별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정부의 초대형 IB 육성방안이 '한국판 골드만삭스'의 탄생을 가속화시키고 있다. 국내 자기자본 1위 증권사인 통합 미래에셋대우를 포함해 NH투자증권, 통합 KB증권, 삼성증권, 한국투자증권 등 굵직한 대형사들이 초대형 IB로 도약하기 위한 채비를 갖추고 있다.

증권맨 출신의 자본시장 전문가 박용린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사진)을 지난달 30일 여의도 그의 연구실에서 만나 초대형 IB의 본질과 증권업계의 미래 발전 방향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박 실장은 우선 IB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자본시장은 자본이 거래되는 시장으로 수요층은 기업, 공급자는 기관과 개인을 비롯한 모든 투자자"라며 "자본시장은 크게 보면 기업의 자금조달시장이라고 할 수 있겠다"고 말했다. 이어 "IB는 순수 IBD 뿐만 아니라 캐피탈마켓(Capital Market) 비즈니스까지 연결되고, 투자자와 기업 사이에서 업무를 중개하는 역할을 한다"고 설명했다.

◇ 말레이시아 CIMB 수준 돼야 亞 주요플레이어 성장 가능

IB들의 핵심 업무인 IBD는 무한한 확장의 영역에 있다는 게 박 실장의 설명이다. 그는 "IBD를 한 마디로 정의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며 "좁게는 기업금융(IPO) 및 M&A 관련 자문업무로 한정할 수도 있지만, 넓게는 글로벌 IB들이 현재 수행하고 있는 모든 업무까지 확장시킬 수 있는 포괄적 개념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하지만 결국 IBD의 본질은 '가격정보의 생산'"이라며 "시장에서 한 번도 거래된 적 없는 물건(회사)의 정확한 가치를 파악하고, 이를 바탕으로 거래를 중개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렇다면 국내 증권사들이 아시아 내에서 경쟁력 있는 IB로 부상하기 위해 필요한 최소 자기자본은 얼마일까. 박 실장은 "정답은 없지만 일본 노무라(26조원), 중국 CITIC(22조원), 말레이시아 CIMB(10조원) 등으로 미뤄볼 때 최소 CIMB 수준으로 가면 현실적일 것"이라며 자기자본 10조원 이상을 제시했다. 그는 "물론 자본력이 생긴다고 해서 지역화가 되느냐는 또 다른 문제"라며 "(자본확충도) 벌어서 해야지 유증을 통하면 자기자본비율 등이 떨어질 수 있고, M&A가 좋지만 (지배주주) 지분율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다"고 꼬집었다.

최근 M&A와 유상증자를 통해 덩치를 키운 국내 증권사들이 초대형 IB로 거듭나려면 자본확충 외에 정성적 노력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그는 "순수한 IBD 업무는 사실상 머리로 하는 비즈니스고, 캐피탈마켓 업무는 자본력을 필요로 하는 부분"이라며 "현대의 IB는 이 두 가지 요소가 얼마나 조화를 잘 이루느냐에 달렸다고 할 수 있다"고 귀띔했다. 장기적 관점에서 전문 인력을 배양하고 정보 네트워크를 구축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특히 국내 증권사들이 초대형 IB로 도약하는 과정에서 프리IPO(Pre-IPO) 및 중견기업 이상의 기업들과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 등에 집중할 것을 주문했다. 박 실장은 "정부의 초대형 IB 육성 이유를 보면 벤처캐피탈(VC)이 보수적으로 대출을 하기 때문에 중간에 있는 성장하는 경제에 기업금융을 제공할 수 있는 길이 별로 없음을 알 수 있다"며 "정부는 이걸 하자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에너지 및 SOC 분야 PF 투자를 강조한 이유는 정부가 (국내 증권사들이) 해외 프로젝트에서 주도적 역할을 못하고 다 뺏기고 있으니 (정부는) 증권사들이 위험을 감수해주길 바란다는 차원"이라고 덧붙였다.

◇ 현대 초대형 IB, 자본력·탤런트 조화 '관건'

한편, 초대형 IB 출범과 관련해 제기된 중소형사 소외현상 등에 대한 생각도 나왔다. 박 실장은 "중소형사들은 특화를 해야 한다"며 "경험과 실력이 쌓이게 되면 대기업들도 쫒아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앞서 밝혔듯이 초대형 IB들이 나오게 되면 자잘한 딜은 맡을 수 없게 된다"며 "1000억원 짜리 딜 1개를 대형사가 선택할 경우 남은 10억짜리 100개 딜들은 중소형사들에게 자연스레 돌아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서 시장 일각에선 정부의 초대형 IB 육성방안이 ‘대형사 몰아주기’라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다.

증권업계의 구조조정 문제와 관련해선 사업부문이 중첩되지 않는 효율적인 M&A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그는 "물론 어느 정도의 해고는 모든 M&A에 있을 수밖에 없는 게 사실"이라며 "A회사의 기획실과 B회사의 기획실이 합쳐진다면 둘 다 있을 필요는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문제는 대량해고로, 대량해고는 사업이 너무 동일하게 합병됐을 때 발생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결과"라며 "사업부문이 다른 경우 해고를 최소화할 수 있는 만큼 합리적인 M&A가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박 실장은 국내에서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 등 금융업계 전반의 합종연횡에 대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그는 "법적 칸막이가 있든 없든 (서로에) 수렴하는 건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추세"라며 "유럽에선 법적으로도 문제가 없고, 씨티그룹과 JP모건체이스 등도 다 은행계열사를 끼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물론 은행은 망하면 안되기 때문에 어느 수준에서 (건전성) 규제를 가져가야 할 것인가가 민감하고 헷갈릴 수 있는 문제"라면서 "증권사들의 저축은행 인수 등에 대해선 더 연구해봐야 할 문제"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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