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슈진단] 엘리엇의 속삭임에도 삼성 지배구조 개편 '險路'
[이슈진단] 엘리엇의 속삭임에도 삼성 지배구조 개편 '險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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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서울파이낸스DB

중간금융지주사법으로 최적의 시나리오 완성 가능할까?

[서울파이낸스 김희정 서지연기자] 최근 미국계 헤지펏드 엘리엇의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 요구와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의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 추진으로 삼성그룹 지배구조 개편이 급물살을 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이재용의 '뉴 삼성'을 위해 엘리엇이 명분을 만들었고, 공정위가 실질적인 여건을 마련해주고 있다는 해석이다.

삼성전자는 지난달 27일 콘퍼런스콜에서 “엘리엇이 제안한 모든 사항에 대해 이사회와 경영진이 신중히 검토 중”이라며 화답했다. 그러면서 “주주 환원을 포함한 전반적 제안들에 대해 11월 안에 방향을 정리해서 시장과 공유하겠다”고 덧붙였다.

'이재용 시대'의 절대 과제로 부각된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은 순항할 것인가. 열쇠는 삼성생명이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 구상이 어떤 것이라고 하더라도 삼성생명의 지주사 전환은 필수적이고 시간문제다. 그동안 삼성생명을 언제든 금융지주사로 전환시킬 수 있도록 사전 준비 작업을 해온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지배구조 개편 '열쇠' 삼성생명, 지주사 전환 시간 문제 = 최근들어 삼성생명 지주사 전환 작업은 가속화되고 있다. 지난달 24일 삼성생명은 삼성화재가 갖고 있던 삼성증권 주식 8.02%를 시간외매매 방식으로 매입했다. 이로써 특별계정을 제외한 삼성생명 보유 삼성증권의 주식수는 1464만5770주, 지분율은 19.16%로 높아졌다.

현행 금융지주회사법상 금융지주회사가 되려면 자회사 지분을 30% 이상(비상장사의 경우 50% 이상) 보유해야 한다. 아직 삼성생명의 삼성증권 보유지분은 30%에는 못 미치지만 최대주주 자격은 갖춘 셈이다.

문제는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등 비금융 계열사의 최대 주주 자리를 내놓아야 한다는 점이다. 삼성생명은 지난 9월 한 달간 장내에 삼성전자 주식을 지속적으로 매각해 지분율을 7.3%에서 6.59%까지 낮췄다. 하지만 여전히 최대 주주다. 2대 주주인 삼성물산(4.2%)이 1.6%를 사들여 최대 주주로 올라서면 되지만, 3조원 달하는 매입금액이 큰 부담이다.

그런데 이같은 상황에서 호재가 등장했다. 공정위가 올해 말까지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나선 것이다. 금산복합집단이 지주회사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금융사 보유를 허용해주는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이 필요하다는 게 공정위의 구상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중간금융지주사법은 금산분리(금융과 산업의 분리)를 강화하면서 지주회사 체재로 전환할 수 있는 여건을 조정해 준다"고 말했다.

삼성그룹은 지난 2013년부터 전자계열사와 금융계열사를 각각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중심으로 펼치는 수직계열화 행보를 보여 왔다. 특히 삼성 금융계열사는 모두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지배구조가 재편됐다.

2014년 이건희 회장이 쓰러진 이후 삼성그룹은 이런 행보에 속도감을 더해 방산, 화학 계열사들을 한화와 롯데로 매각하는 강도 높은 사업재편을 단행했다. 공정위의 관련법 개정안이 통과돼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하는 것은 사실상 삼성계열사 정비 작업의 마지막 단계로 여겨진다.

삼성그룹이 삼성생명을 통해 삼성전자를 지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지배력 확보를 위해 삼성물산이 일반지주회사 체제로 가는 시나리오는 삼성생명에 의해 항상 발목이 잡혔었다. 현행 공정거래법상 지주회사는 금융회사를 자회사로 지배할 수 없고, 자회사가 아닌 계열사의 지분을 보유할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 때마다 삼성생명 지분 매각이 이슈로 부각된 이유다. 그런데 삼성생명이 중간금융지주사로 전환하면 이런 문제들이 대부분 해소될 수 있다.

◇최상의 시나리오는 삼성생명 통한 '전자' 지배 = 이 법안이 통과되면 삼성물산이 갖고 있는 삼성생명 지분 19.34%를 처분하지 않고 그대로 둘 수 있게 된다. 이 경우 이 부회장 입장에선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보유한 삼성생명 지분 20%가량을 상속세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더불어 삼성물산 개인 최대주주인 이 부회장은 당분간 삼성생명을 통한 삼성전자 지배력을 유지할 수 있다.

그 다음엔  엘리엇의 구상처럼 삼성전자를 사업회사와 투자회사로 분할해 이 중 투자회사를 삼성물산과 합병시켜 새로운 합병 지주사를 만드는 방안이 실현 가능해 진다. 동시에 올여름부터 추진해 온 삼성SDS 물류사업을 분사시켜 삼성물산에 넘기는 시나리오도 다시 추진력을 갖게 될 것으로 보인다. 금산분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간금융지주회사법안이 발의돼 통과되면 삼성으로선 최적의 지배구조 개편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상황은 녹녹치 않다. 여소야대에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극도로 불안한 정국, 그리고 내년 대통령 선거 등으로 이어진 각종 변수들로 인해 중간금융지주사법안의 발의와 국회 통과를 낙관하기 어렵다.

중간금융지주회사법이 통과된다 해도 걸림돌은 산재해 있다. 계열사들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모이기 위해서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약 15%, 삼성증권 약 10% 수준의 추가 지분확보에 나서야 한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추가 자금만  2조원 가량으로 추산된다.

현행 보험업법상 계열사 투자 한도는 취득가 기준으로 전체 운용자산의 3%를 넘기기 어렵고, 대부분의 한도를 삼성카드(지분율 71.86%)가 채우고 있어 버퍼(완충장치)가 5000억 미만밖에 남지 않았다. 업계에서 삼성카드와 관련 분할 후 합병, 유상감자, 심지어 매각설까지 나도는 이유다.

여기에 올해 2분기 기준 삼성생명의 자기자본은 29조4000억원으로, 인적분할로 계열사 지분을 보유한 지주회사와 보험업을 하는 사업회사로 분할된다고 가정하면 지주회사의 자기자본이 최소 3조원 이상은 돼야하기 때문에 사업회사의 RBC비율이 크게(75.78%p) 하락해 200%대로 주저 앉게된다.

이에 더해 보험업의 경우 2020년~2021년 도입되는 보험국제회계기준(IFRS4) 2단계와 현재 논의 중인 신RBC제도 도입까지 염두에 둬야 한다. 때문에 자본이 감소하는 인적분할은 상당한 리스크 요인이다. 앞서 한국신용평가는 IFRS4가 적용될 경우 지난해 말 기준 33개 주요 보험사의 부채증가 예상규모는 무려 96조원에 달할 것으로 추산했다. 이 중 생보(삼성·한화·교보) '빅3'가 차지하는 부채 증가액만 60조원에 육박한다.

◇ 중간금융지주사법과 '삼성생명법'의 향방, 그리고 2단계 국제회계기준 = 문제는 또 있다. 현재 금융지주법상 삼성전자, 호텔실라 등 비금융계열사는 삼성생명 사업회사가 보유하게 되는데 엘리엇이 요구한 삼성전자 인적분할(지주회사-사업회사)이 이뤄지지 않고 중간금융지주회사로 전환할 경우 보험지주사의 자회사인 보험회사는 비금융회사(삼성전자, 호텔신라)를 지배할 수 없게 된다. 금산법상 계열사 5% 이상 소유시 금융위와 공정위의 협의가 필요하다는 점도 부담이다.

하지만 무엇보다 큰 장애물은 이종걸(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일명 '삼성생명법'이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삼성생명이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 7.34%는 삼성생명법 통과시 시가기준으로 산정되고, 그 대부분을 매각해야 한다.

삼성생명의 계열사 지분 투자한도는 총자산의 3%로, 약 4조7000억원 이내로 계열회사 주식을 보유할 수 있다. 지난 2013년말 기준 삼성생명이 보유한 계열사 지분은 취득원가로 계산하면 2조6000억원이지만 재무제표상 가액(시가)로 계산하면 19조1000억원으로 한도를 크게 웃돈다. 따라서 삼성생명은 7년 내 약 15조원 수준의 계열사 지분을 처분해야 하는 엄청난 부담이 생기게 된다.

다만, 중간금융지주회사 제도 도입으로 이재용 부회장의 상속세 부담은 대폭 완화될 수 있다. 합법적인 절세가 가능해지기 때문. 이건희 회장이 개인적으로 보유하고 있는 삼성그룹 주요계열사 지분은 지난 9월말 기준 삼성전자 3.38%, 삼성물산 2.86%, 삼성생명 20.76% 등이다. 이를 이 부회장이 정식으로 상속받을 경우 상속세만 최소 5~6조원으로 추산된다. 그런데, 중간금융지주회사제도가 도입될 경우 이 부회장은 이 회장의 지분 대부분을 중간금융지주회사에 넘기고 삼성전자 지분에 대한 상속세만 내는 시나리오가 성립할 수 있다는 게 일부 전문가들의 견해다.

하지만 앞서 지적했듯이 현재로선 중간금융지주제도 도입 자체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중간금융지주제도가 무산될 경우, 삼성생명을 금융지주사로 만들어 금융 계열사들을 지배하는 한편 삼성물산이 삼성전자 투자회사를 지배하고, 삼성전자 투자회사가 다시 자사주를 바탕으로 삼성전자 사업회사를 지배하는 구조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삼성그룹의 지배구조 개편이 삼성생명을 중심으로 한 금융 계열사의 수직계열화와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한 비금융 계열사의 수직계열화, 즉 투트랙으로 진행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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