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점] '구조조정 면책권'은 면피용 마스터키?
[초점] '구조조정 면책권'은 면피용 마스터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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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여당 내에서 기업구조조정 실무자에게 법적으로 면책권을 주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최근 기업구조조정 결과를 놓고 국책은행 등에 비판 여론이 잇따르고 있는 만큼, 향후 구조조정 과정에서 의사결정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 탓이다.

하지만 면책권을 사전적으로 부여할 경우, 구조조정 결과에 대한 실무자들의 '면피용 마스터키(만능 열쇠)'로 사용될 소지도 있어 법안 발의를 앞두고 적잖은 논란이 예상된다.

◇ 與 "기업구조조정 결과에 면책권 주자"

29일 금융권에 따르면 김종석 새누리당 의원은 구조조정 주체에게 면책권을 부여하는 '기업구조조정촉진법 일부개정법률안(초안)'을 공개했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은 확정하지 않았지만 조만간 초안 검토를 완료하고 법 발의를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개정안 초안에는 '공무원과 공공기관의 임직원이 고의 또는 중대 과실 없이 이 법에 따라 기업구조조정을 위해 업무를 적극적으로 처리한 경우에는 그 결과에 대해 징계 요구 또는 문책 요구 등을 해서는 아니된다'는 조항이 담겼다.

이 조항만 보면 금융위원회를 비롯해 금융감독원, KDB산업은행, 수출입은행 등 공무원과 공공기관 임직원이 모두 기업구조조정에 대해서는 면책 대상에 속하게 되는 셈이다.

김종석 의원실 관계자는 "면책 대상은 실무자만 포함될 수도 있고, 최종 책임자까지 포함될 수도 있다"며 "아직 검토해야 할 부분이 많아 명확하게 규정하진 않았지만, 최종 발의안에는 대상을 명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융당국도 구조조정 실무자에 대한 면책 필요성에 공감하는 분위기다. 금융위는 국책은행에 공문을 보내 감사원법의 '불합리한 규제의 개선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해 업무를 적극적으로 처리한 결과에 대해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징계ㆍ문책 요구 등 책임을 묻지 아니한다'는 조항을 안내하기도 했다.

이명순 금융위 구조개선정책관은 최근 세미나에서 "구조조정 담당자는 행정, 민·형사상으로 책임추궁 가능성에 노출돼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구조조정 추진에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다"며 "성공적인 구조조정 추진을 위해 담당자의 적극적인 판단과 집행이 불가피한 만큼 현행 면책 제도 적용, 관계법령 개정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 사진=서울파이낸스DB

◇ '변양호 신드롬' 등 보신주의 팽배

이처럼 여당과 금융당국이 면책권을 주장하는 데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의 의사결정 위축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는 논리가 핵심으로 작용한다. 결과론으로 흐르기 쉬운 기업구조조정의 특성상, 면책특례를 적용하지 않으면 구조조정 과정을 조율하고 결정하는 주체들이 자연스럽게 보신주의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기업이 잘못되면 과거 구조조정 과정에서 주체자들이 그런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던 상황은 고려되지 않고 비판만 받는 게 현실"이라며 "결국 구조조정을 실무자들은 최대한 책임을 덜 지는 쪽으로 몸을 움츠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이른바 '변양호 신드롬'이라는 이름으로 관료들의 보신주의가 비판받곤 한다. 변양호 신드롬은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국장이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직후 금융권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외환은행을 론스타에 매각했다가 '헐값 매각' 논란으로 재판까지 갔던 사례다.

결국 변 전 국장은 무죄로 풀려났지만, 관료 사회에서는 사건을 계기로 공무원들이 복지부동하는 분위기가 더 만연해졌다. 이 또한 결국 구조조정 결정자에 대한 보호 장치가 제대로 돼있지 않기 때문이라는 게 '면책권'을 주장하는 측의 해석이다.

◇ "책임은 없고 권한만…논의과정 공개 등 보완장치 필요"

하지만 기업구조조정 주체들에게 사전적으로 면책권을 보장하는 것은 '권한'만 주고 '책임'은 지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특히 국내 구조조정 관행상 채권단과 금융당국이 의사결정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되지 않아, 담당자들이 면책권을 책임 회피 도구로 사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원승연 명지대 경영학과 교수는 "구조조정 결과가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엄청나고, 그 결과에 따라 이익 배분 또한 달라지기 때문에 실무자들에게 사전적으로 면책권을 주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결과에 대한 책임을 모두 지우는 것은 과도하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일정 부분 책임을 지는 것도 공적 기능을 하는 사람들의 역할"이라고 말했다.

더욱이 한국의 경우 서별관회의를 비롯한 구조조정 논의 과정이 공개되지 않는 상황이라, 법적 면책권부터 만드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다는 게 원 교수의 생각이다.

그는 "미국의 경우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할 때 논의된 회의록 뿐만 아니라 결정 근거와 과정을 모두 투명하게 밝힌다"며 "이를 통해 의사결정 과정을 살필 수 있기 때문에, 담당자가 사익을 추구하거나 절차를 위반한 게 아닌 이상 구조조정에 실패하더라도 책임을 묻지 않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면책권을 법적으로 보장하더라도 보완 장치를 함께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실무자들 입장에서는 구조조정이 실패로 돌아갈 경우 져야 할 책임이 크고 저가매각 책임론이 불거질 수 있어, 구조조정을 주도적으로 하지 않는게 최선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이라며 "면책권을 도입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구조조정에 들어간 회사에 대해 사전적으로 평가하고 처리하는 과정에 대한 프로세스를 만들 필요가 있다"며 "또 어떤 절차에 따라서 구조조정을 했는지 알 수 있는 사전적인 프로세스만 잘 만들어 놓으면 면책권이 면피용으로 사용되는 부작용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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