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의 빈곤
<칼럼>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의 빈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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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계형 절도가 늘어난다는 보도가 있었다. 기사 내용중에 그런 유형의 절도사건이 언제와 비교해 얼마나 늘었다는 비교가 없어 실상을 제대로 알기는 어렵다. 단지 ‘양극화의 심화로 국민소득 2만 달러시대를 맞으면서도...’라는 현실 고발의 의지만 읽힌다.

요즘 국민소득 2만 달러의 의미를 두고 이런 저런 얘기들이 나오는 걸 보며 30 년 전 ‘대망의 80년대’를 노래하던 시절을 떠올리게 된다. 정부는 그 대망의 80년대가 오면 이만 저만하게 살기 좋아질 거라며 국민들의 인내를 요구했지만 18년 장기집권, 지속되는 개발독재로 인한 부익부빈익빈 현상에 대한 국민들의 염증을 가라앉히기엔 역부족이었다.

박정희 대통령이 그 80년대를 코앞에 두고 측근의 총탄을 맞아 숨졌지만 그 해에 이미 부·마 항쟁으로 촉발된 국민적 저항은 전국에 계엄령이 내려질 만큼 유신체제 하에서조차 거세게 일어났다. 그런 국민들은 결국 ‘대망의 80년대’를 신군부 쿠데타와 함께 맞아 경제적 과실의 맛을 느낄 겨를도 없었다.

물론 80년대에는 여러 국제적 여건이 우리 경제에 우호적으로 작용한데다 서툰 경제운용을 오직 ‘물가안정’이라는 컨셉트 하나로 단순화시킨 신군부의 전략이 의외의 성과를 거둬 경제적으로는 상당히 안정된 시절을 지냈다. 당시 레일을 바꿔 탔어야 할 경제정책이 그냥 개발독재 시절 낡은 레일 위로 내처 달린 통에 결국 외환위기까지 치닫는 원인이 됐지만 어쨌든 정치적 혹평 속에서도 신군부 2대 정권은 경제적으로는 대중적 인정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젊은이들은 ‘대망의 80년대’는 대체 어디 있느냐고 종종 비아냥댔다. 국민소득이 증가하는 것이 계단을 올라가듯 점증하는 것이니 그 소득증대로 인해 변할 생활의 모습 역시 가랑비에 바짓가랑이 젖듯 슬금슬금 변하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국민적 청사진을 요란하게 제시해 놓으면 그 기대수준은 결코 충족시킬 수 없다. 요란한 청사진의 결과를 마치 만화영화 속의 마법사가 지팡이를 휘둘러 ‘얍!’하는 순간 세상이 변하듯 급격히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를 은연중 하기 마련이니까.

요즘 ‘소득 2만 달러 시대가 됐다지만 云云’하는 얘기들도 마찬가지다. 국가 전체로는 1인당 GNP 2만 달러가 됐을지 몰라도 ‘나’는 소득증가로 인한 여유를 느끼지 못한다. 국민소득이 는 만큼 물가도 올랐을 터이지만 그보다 스스로 씀씀이가 커진 사실을 인정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불만도 크다.

요즘 엔간한 중산층이라면 당연한 코스처럼 대학생 자녀들 단기연수든 장기유학이든 해외로 보내고 대학 재학 중에 한두 번 해외여행 하는 게 흔한 일상이 됐다. 휴가철에 국내 휴양지 한번 가기 수월찮았던 세대도 이제 동남아 정도의 근거리 해외여행쯤은 예사로 여긴다.
부유층 자녀 아니어도 젊은이들은 취업하면 자동차부터 사고 보는 소비문화를 충족시키자면 그깟 국민소득 1만 달러 는 것으로 충분할 리가 없다. 세계 유명 연예인들이 주된 고객이라는 소위 ‘명품’ 브랜드도 한국에선 넘쳐나고 있으니 그런 씀씀이를 국민소득 2만 달러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다. 당연히 현재의 상황에 불만이 커진다.

상류층에서 중산층까지 번진 그 감당하기 버거운 지출을 충족시켜주는 비용의 1차적 원천은 뭐라해도 부동산투기다. 투기로 쉽게 번 돈 펑펑 쓴들 누가 뭐라 하지 않는 문화 속에 강남 오렌지족도 자라났고 그들이 낀 연예오락프로그램을 통해 청소년들의 소비열망을 키워주며 사회적 소비욕구의 확대재생산이 이루어진다.

그런 사회의 그늘에 빈곤층은 결코 줄어들지 못한다. 절대빈곤층의 존재를 두고 북한을 지원하고 다른 나라를 원조할 비용으로 그들을 도우라는 인터넷 리플들이 줄줄이 달린다. 지금 우리 사회 절대빈곤층의 존재는 결코 우리의 경제적 능력이 모자라서가 아니고 사회적 재화를 분배해야 할 그 시스템이 미비해서인 것을 납득할 때에야 비로소 해결될 일임을 우리는 서로 말하려 하지 않는다.

분배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하지 않는 한 국민소득이 10만 달러가 된들 빈곤층의 비참한 삶이 사라지지 않는다. 국가 사회가 자칫 방심할 때마다 그 숫자는 급격히 증가하게 된다. 우리 사회는 서로 책임회피하고 이런 저런 핑계를 대며 빈곤층의 존재를 외면하려 한다. 그들의 증가는 인도주의적 부채인 동시에 결국 우리 사회 성장의 발목을 잡게 될게 뻔함에도 불구하고.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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