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보안과 안보
<홍승희 칼럼> 보안과 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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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하게 들릴 때도 종종 있지만 의미상 차이가 제법 큰 보안과 안보. 요즘 이 문제의 정의를 사회가 새롭게 되새겨 봄직한 일이 발생했다. 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가 그래도 좀 살만해졌기에 나오는 문제들이 아닌가 싶어 세상 좀 살아본 사람 입장에선 일견 흐믓하고 대견스럽기도 하다.
 
국가적 기밀의 보안만 보안이 아니고 국가적 안전보장만 안보가 아니라면 우리네 개개인의 일상에서 사례를 뒤적여보며 그 연장선상에서 국가안보니 국가기밀 보안이니 하는 문제들을 생각해보는 것도 괜찮은 접근법일 성 싶다.

통상 가난한 이들이 모여 사는 동네일수록 네 집 내 집 구분 없이 오가며 사는 경향이 있고 이런 생활을 문학 작품 등에서는 정답게 산다고 표현한다. 돈이 많으면 많을수록 담장도 높아지고 식구들마다 각기 바빠 집이 비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요즘은 보안회사가 설치한 자동감시센서를 설치한 가정집들도 많아지고 있다.

부자 동네에서 방범에 크게 신경 쓰기 시작한 것이야 어제 오늘 일도 아닐 터이지만 계획경제의 떡고물이 흘러 다니기 시작한 1970년 전후 시간대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 무렵 방범 수준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됐던 듯하다. 당시 신흥부자촌 가운데 하나였던 서울 연희동의 수백 평씩 하는 저택마다 동네 파출소로 비상벨이 연결됐던 것을 그런 집에 살던 친구를 통해 알게 됐다.
 
그렇게 하고도 지하실에는 성년이 된 자식들에게만 보여주는 비밀금고가 겉에 시멘트를 바른 채 숨겨져 있었다고 들었다. 행여 도둑이 들었다가 눈에 띄는 패물 하나 없으면 집에 있던 사람들에게 해코지할까 염려해 3돈짜리 금가락지나 3부쯤 되는 다이아반지 정도를 늘 경대 위에 올려놓는다고도 했다. 그쯤이면 당시 웬만한 중산층들 결혼식 때 주고받는 패물 수준은 된다.

궁금하면 참을 수 없던 학생시절인지라 지하실에 파묻힌 그 금고엔 대체 뭐가 들었느냐고 물었다. 주로 금궤와 달러가 채워져 있다고 했다. 쓰지도 않을 건데 왜 그렇게 숨겨두느냐니까 “이북이 쳐내려오면 해외로 나갈 때에 대비한 것”이라고 심상하게 답하던 그 친구의 얼굴이 다시 보였던 기억이 난다.

요즘 정치권에서는 한미 FTA 협상방안을 담은 기밀자료를 국회에서 유출시켰느니 아니니 하면서 시끄럽다. 그런 와중에 국가정보원은 우방일지라도 기밀유출은 처벌하도록 비밀보호법 제정안을 입법예고했다는 소식이 나왔다.

그래서 보니 현재는 국가기밀 유출이 단지 논란이 되고 있는 국가보안법과 형법에만 적시돼 있고 그 범위도 ‘적국을 위하여’ 정보를 유출한 경우에만 처벌을 명문화시켜두고 있는 상태라고 한다. 명백한 적국이 아니라면 어떤 국가기밀을 유출해도 처벌할 수 없다는 얘기다.
 
만약 특정국에 국가기밀을 유출했다고 처벌했다가는 자칫 외교문제가 발생해도 할 말 없는 이상한 상황인 것이다. 애초에 자주국가의 법으로는 참 잘못 만들어진 법인데 희한하게 그동안 그 누구도 이를 문제 삼지 않았다.

이제까지 한국 정부의 기밀사항이라도 미국에 주는 것은 매국행위가 아니라는 의식이 지도층에 적잖게 퍼져 있었다는 반증일 터이다. 그런 점을 감안하면 이번 국정원이 입법예고한 ‘비밀의 관리와 보호에 관한 법률’의 제정은 이제야 한국이 진정으로 자주국가로 갈 의식 수준에 도달했다는 신호로 봐야하나 싶기도 하다.

다른 한편으로는 그만큼 우리도 뭔가 지킬 것이 생겼다는 자각을 하게 된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동안 온 동네를 향해 대문 열고 심지어 안방 문까지 다 열어놓고 지내도 거리낄 게 없었던 살림살이에서 이제는 이것저것 지킬 게 있을 만한 나라가 됐다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산업스파이 문제도 이제까지와는 달리 볼 계기가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그동안은 국방도 외교도 죄다 미국이 대신 해주는 것쯤으로 알고 독자외교를 추구하는 것도 좌파요 자주국방을 진전시키는 것도 좌파라던 이들이 우리 사회의 주류였다면 이제는 그들이 우파가 됐고 과거 좌파로 불리던 세력은 중도가 됐다. 그만큼 우리 사회의 사고 폭도 넓어지고 유연해졌다. 더 넓은 세상을 보게 된 것이다.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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