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희 칼럼> 농협과 프로야구단
<홍승희 칼럼> 농협과 프로야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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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미수퍼스타즈, 청보핀토스, 태평양돌핀스, 현대유니콘스.
1982년 한국프로야구의 출범과 함께 탄생한 한 야구단이 지난 24년간 거쳐온 이름들이다. 그 야구단이 이번에 또 다시 개명을 하게 생겼다. 평균 6년에 한번꼴로 개명해야 하는 이 야구단의 운명도 참 기구하다.

삼미수퍼스타즈 하면 야구를 잘 모르는 이들에게도 만년 꼴찌팀이라는 이미지로 확실히 각인된 비운의 팀이다. 초반부터 지원부족, 선수부족에 지리멸렬하던 이 팀이 갖가지 불운을 겪다 현대 유니폼을 입고 우승까지 하면서 완전 신세 역전되는가 싶더니 또 구단주가 바뀐다 한다. 야구팀 입장에서 보면 어쨌든 딱한 일이다.

그런데 이번엔 하필 인수자가 ‘농협’이어서 문제가 되고 있다. 전국 농협 노조와 한농연 등 농민단체들이 반대하고 농림부는 농협이 야구단을 인수할 경우 농협법을 근거로 이를 취소시키거나 농협회장 직무정지를 검토하겠다고 나섰다. 제1야당 최고위원회에서도 “야구단 인수계획을 철회하라”는 요구가 나왔다 한다.

가뜩이나 FTA협상 반대 시위로 농민사회가 속 시끄러운 상황에서 농협의 프로야구단 인수는 참 엉뚱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반대하는 이들은 한결같이 농민사회를 기반으로 태어난 농협이 대다수 농민들이 빚더미 위에 올라앉은 상황에서 프로야구단을 인수한다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입장을 보인다.

KBO가 중재한 야구단 인수 금액은 현재 알려지기로는 당초 예상보다 상당히 낮아진 약 134억 원. 종전의 프로구단 인수금액에 비하면 낮은 금액인데다 그 134억 가운데는 서울 입성을 위해 기존 서울 연고 구단들에게 지불해야 할 50여억 원이 포함돼 있다고도 한다.

그렇다면 단순히 농협이 농민현실은 무시한 채 무슨 프로야구단이냐고 반발할 문제만은 아닐지도 모른다. 프로야구단은 어떻게 운영되느냐에 따라 막대한 부가가치를 지닐 수 있는 마케팅 수단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경제 월간지 포브스코리아가 미국 포브스의 메이저리그 평가 방식을 적용해 국내 8개 구단의 가치 평가를 한 바에 따르면 1위인 삼성의 브랜드 가치는 339억 원. 물론 꼴찌 팀이었던 현대는 98억 원에 그쳤다.

그렇다 하더라도 일반 사기업에서 현재 논의되는 가격에 프로야구단 인수계약이 진행된다면 크게 반발이 나오지는 않을 성 싶다. 제시되는 청사진에 따라 주주들의 기대가 커질 수도 있는 사안이다.

그런데 문제는 농협과 프로야구단은 얼핏 봐서도 어쩐지 썩 어울리는 조합으로는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미국 직수입품인 야구라는 운동 자체가 도시적 이미지를 풍기기도 하지만 프로 경기 구장들이 모두 대도시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프로 스포츠 자체가 이미 반 농촌적일 수 있다.

그런데도 농협이 굳이 프로야구단 인수를 추진하고 또 연고지로 서울을 고집하는 이유는 뭘까. 아직 농협 측으로부터 이렇다 할 설명이 나올 단계도 아니어서 확실한 것을 알 수는 없으나 그간 농협중앙회가 보여 온 행보를 보자면 어슷비슷한 추론은 가능할 성 싶다.

그간에도 신용사업 부문을 농협에서 분리시키려는 시도가 간헐적으로 나타나곤 했다. 이제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을 앞두고 있는 상태에서 농협 신용사업 부문도 금융업으로서의 진로를 적극적으로 선택해 갈 것인지 여부를 분명히 해야 할 시점이 되긴 했다. 그런 농협 입장에서 서울을 연고지로 한 프로야구단을 인수하는 것은 농협의 환골탈태를 선언할 호재가 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러니 농림부가 농협법을 들고 나서며 발끈할 법 한 일이기도 하다. 농림부의 품을 떠나 재경부의 울타리로 들어가려는 농협 신용사업부를 수수방관할 리는 없으니까. 농협 수익의 대부분이 신용사업에서 나오고 있다면 더더욱 그러할 일이다. 이래저래 버림받는 농민들만 딱하다 싶다. 지금쯤 재경부나 금감원은 혹 표정관리 중인 것은 아닌가 모르겠다.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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