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FTA와 다이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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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뚱뚱하다’는 한마디에 다이어트를 강행하던 신장 167.6Cm에 체중 40Kg 나가던 패션모델이 사망하는 사건이 있고나서 이태리 패션계를 중심으로 말라깽이 모델 추방 바람이 불고 있다는 외신 뉴스가 있었다.
 
사망한 그 모델이 태어나고 자란 브라질에선 올들어 또 한명의 모델지망생 소녀가 신장 170Cm, 체중 40Kg의 체격을 가진 채 거식증으로 사망했다고 하며 지난해 11월 이후 브라질에서만 거식증으로 목숨을 잃은 젊은 여성이 6명이나 된다고 한다.

이는 비단 브라질만의 일이 아니다. 영국 일간지 가디언의 보도에 따르면 전세계적으로 15~25세 젊은층의 1~2%가 거식증상을 보이고 이 가운데 13~20%가 숨진다는 노르웨이의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런 현상과 관련해 브라질 언론은 ‘과거 브라질에서는 작은 가슴과 풍만한 하체를 가진 여성이 미인으로 간주됐으나 최근 기준이 변하면서 성형수술이 크게 유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브라질의 한 교수는 “북반구로부터 건너온 이미지 때문에 어떤 희생을 치르고라도 날씬해지기를 원하고 있다”며 “브라질 여성에게는 가혹한 문화적 부담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물론 이는 한국 여성들이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 성형외과가 괜히 번창하며 다이어트 산업이 까닭 없이 급성장하겠는가.

과도한 여성 다이어트에 대해 흔히 기혼 남성들은 여성들의 허영이라 하고 페미니스트들 중 일부는 여성들의 주체성 결여라고도 하고 매스미디어의 최면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이번 모델 사망 사건에서 보듯 브라질에서는 수천명의 10대 소녀들이 모델을 꿈꾸며 오늘도 다이어트에 여념이 없다고 한다. 모델이라는 직업이 돈도, 배경도 없는 가난한 소녀들에게는 그 굴레를 벗어날 꿈의 직업으로 비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앞서 브라질의 한 교수가 지적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세계가 단일문화권으로 변화해가는 현대사회에서 ‘글로벌화’라는 구호아래 세계 전 지역 모든 민족의 고유문화나 미적 취향들이 사라지고 있다. 오직 매스미디어를 통해 비쳐지는 규격화된 미의 기준이 현 인류를 관통하고 있다.

한국사회도 미군의 진주, 급격한 산업화와 수출주도 경제개발 등의 과정을 겪고 이제 인터넷 강국이라는 이름으로 세계적인 문화컨텐츠들을 접하며 빠르게 미의 기준이 바뀌어 왔다. 그런 변화의 흔적은 지금도 70대 이상의 노년층에서 발견된다. 그들 세대는 요즘 인기있는 소위 꽃미남·미녀 연예인들을 보면 고개를 갸우뚱한다. 대개의 젊은 연예인에 대해 “왜 쟤를 예쁘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한미FTA 협상이 열릴 때마다 극심한 반대시위로 몸살을 앓는다. 미국 쪽이 협상의 우선순위로 꼽는 산업일수록 위기감이 클 수밖에 없고 그래서 처음엔 농민시위만 부각됐지만 이제는 의약분야에서도 반발이 나오는 등 여기저기 파열음들이 터져 나온다.

분야별로는 분명 큰 타격을 받을 산업도 있겠고 전반적으로도 위기감이 생길 여지는 충분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기 없이 존속한 문명이 없고 경쟁 없이 살아남은 국가도 없다. 분야별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대비와 함께 우리의 잠재워진 자신감을 날 세워 수비자세에서 공격자세로 우리 스스로를 변화시켜 나갈 때 지금 우리가 몇 년째 주춤대는 선진국 문턱도 넘어설 것이다.

80년대 말 처음 금융시장 개방 문제가 의제가 됐을 때도 한국 금융시장 다 죽었구나 싶은 위기감을 가졌었지만 그때는 ‘설마’하다 큰 일 겪었다. 이제는 더 이상 ‘설마’는 없어야 한다. 다만 튼튼한 대책이 필요할 뿐이다. 그런데 정부나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대책들은 뭔가가 빠졌거나 어긋나 있는 느낌이 든다.

앞서 전세계적 다이어트 열풍에서 보듯 지금 세계를 관통하고 있는 이데올로기의 핵심은 예전처럼 정치체제, 국가체제 문제가 아니다. ‘기준’의 문제다. 산업부문에서도 ‘표준’의 선점 문제가 중요하듯 우리 삶을 지지하는 모든 기준을 누가 선점하느냐는 문제다.

우리 고대사의 흥미로운 자료 가운데 하나인 ‘부도지’를 보면 황제와 치우의 싸움이 바로 그 ‘표준’을 누가 주도하느냐는 문제로부터 촉발됐다는 매우 흥미로운 대목이 보인다. 당시의 ‘표준’은 다름 아닌 ‘역법’이었다. 우리 민족이 지배자로서 지켜오던 역법에 대항해 황제가 멋대로 다른 역법을 썼기 때문에 징치하려 전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아마도 그 이후 우리의 역법이 지금과 같은 태음태양력의 형태로 정착돼 온 것인지 모르겠다.

어쨌든 이 문제에서 현재 많은 부분을 1세계가 이미 장악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확정되지 않은 ‘기준’들도 있다. 그것에서는 더 이상 밀리지 않을 각오가 필요할 터이다. 반대시위도 좋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게 그런 일일 성싶다.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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