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證 품은 KB금융, '한국형 BoA' 밑그림 그린다
현대證 품은 KB금융, '한국형 BoA' 밑그림 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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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과거 증권사 인수전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던 KB금융지주가 결국 현대증권 인수전에서 승리를 거뒀다. 이로써 기업 인수합병(M&A)에 유독 취약하다는 우려를 씻어내며 명실상부 종합금융그룹의 밑그림을 그릴 수 있게 됐다.

◇'1조' 베팅…윤종규 "이사회가 가격 전권 줬다"

1일 금융권에 따르면 전날 현대그룹은 KB금융에 현대증권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됐다고 통보했다. KB금융과 막판까지 접전을 벌인 한국금융지주는 예비협상 대상자로 결정됐다.

앞으로 최종 거래 종결까지는 본계약과 대주주 적격성 심사 등의 절차가 남았지만, 별다른 이변이 없는 한 KB금융이 현대증권의 새 주인이 될 것으로 보인다. 딜클로징 시점은 오는 5~6월께로 예상된다.

이번 인수전의 경우 시장의 예상치를 크게 웃도는 입찰가로 막판까지 접전이 벌어지면서, 우선협상대상자 발표가 수차례 연기됐다. KB금융과 한국금융지주 모두 약 1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써낸 데다, 두 회사의 가격 차이도 근소한 수준이라 '비가격적 요소'를 따지는 데 시간이 걸린 것으로 전해진다. 결국 최고액을 써낸 KB금융이 본입찰을 마감한지 6일만에 우선협상권을 따내게 됐다.

당초 시장에서는 이사회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KB금융은 태생적 한계 탓에 과감한 베팅은 어려울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이미 KB금융은 지난해 대우증권 인수전에서도 이사회의 보수적 판단 탓에 가격을 경쟁사들보다 적게 써내며 고배를 마신 바 있다.

▲ 사진=서울파이낸스DB

한 금융권 관계자는 "KB금융이 이 정도로 높은 가격을 쓴 것은 의외였다. 그동안 KB 측에서는 무리한 가격은 써내지 않겠다는 제스처를 외부에 보였던 것으로 아는데, 사전에 가격 정보가 흘러나가지 않게 최대한 몸을 사린 것 같다"며 "불과 지난해 말 대우증권 인수에 실패한 경험이 있어 치밀하게 준비한 것 같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대우증권 인수 실패 이후 그룹 차원에서 인수조직을 재정비하고 현대증권 인수전에 대비해 왔다는 게 KB금융 측의 설명이다.

이와 관련 윤종규 KB금융 회장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사외이사들의 전폭적인 지지가 있었다"며 "모든 가격의 전권을 위임해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현대증권 인수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사외이사들에게 증권사 인수의 배경과 의미를 충분히 설득한 결과, '마지막 대어'인 현대증권을 놓치지 않는 선에서 과감한 베팅을 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윤 회장은 "앞으로 현대증권 인수와 관련된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강조했다.

다만 금융권 안팎에서 제기되는 '고가 매입' 논란은 KB금융으로서는 부담이다. 이른바 '승자의 저주' 우려다. 앞서 시장에서는 현대증권의 인수전이 아무리 흥행해도 7000~8000억원선의 가격에서 딜이 마감될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했다. 현대증권의 장부가격은 6900억원으로, 최근 주가 기준으로는 3000~4000억원 수준이다. 그런데 뚜껑을 열어보니 현재 시가의 3배에 달하는 금액이 인수가로 제시된 것이다.

일단 증권가에서는 향후 자사주 매입을 통해 지분매입 단가를 낮출 수 있고, 장기적인 시너지를 감안하면 속단하긴 이르다는 쪽으로 의견이 모인다.

최정욱 대신증권 연구원은 "약 1조원의 인수가격은 작년 말 현대증권 순자산 가치 대비 약 1.33배 수준으로, 현대증권 자기자본이익률(ROE) 등을 고려했을 때 다소 비싼 인수 가격"이라면서도 "일반적으로 M&A는 경쟁으로 인해 적정한 가격에 인수하기가 쉽지 않다. 당장의 재무적 개선은 크지 않겠지만 미래 투자 관점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평가했다.

김은갑 KTB투자증권 연구원도 "대형 증권사 인수의 기회가 언제나 있는 것은 아니다"라며 "KB금융 규모에 맞는 증권 자회사를 확보한 결과가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또 "인수가격 때문에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는 인수 후 발전을 도모하는 편이 자본효율성 제고 차원에서 보다 바람직하다"고 덧붙였다.

◇'3수' 끝에 잡은 증권사…시너지 효과는?

KB금융은 현대증권 인수가 마무리되면 종합금융그룹으로서 균형 잡힌 사업포트폴리오를 완성하게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KB투자증권과 현대증권이 통합을 거치면 자기자본 3조9000억원의 업계 3위 증권사로 올라서게 된다.

KB금융 관계자는 "KB투자증권만으로는 한계가 있던 그룹 내 금융투자 부문은 비중과 역할이 대폭 확대돼, 사업을 다각화하고 수익기반 역시 다양화하는 계기를 마련하게 됐다"며 "계열사 간 협업을 통해 CIB와 WM 사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상품 교차판매와 고객 마케팅 등 시너지도 한층 더 끌어올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특히 비은행 부문을 강화해 뱅크오브아메리카(BoA)로 키우겠다는 윤 회장의 밑그림도 이번 현대증권 인수로 인해 더 뚜렷해졌다. 앞서 BoA가 2008년 메릴린치를 인수해 그룹 내 WM과 CIB부문 수익비중을 10%에서 21%, 16%에서 38% 수준으로 각각 끌어 올린 것처럼, KB금융도 은행과 증권이 결합한 '한국형 유니버셜 뱅킹'을 추진한다는 계획이다.

윤 회장은 "글로벌 투자은행(IB) 가운데 순수 IB는 노무라가 있는데, 미래에셋증권은 그 모델로 나가려 하는 것 같다"며 "KB금융은 자본력과 고객영업망을 활용해 유니버셜 뱅킹을 추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저성장, 저금리 시대에 중요성이 커지는 WM과 CIB분야를 특화해 그룹의 미래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포부다.

장기적으로 비은행 부문의 수익 비중 강화도 꾀하고 있다. 지난해의 경우 은행이 순이익의 67%로 압도적이었고, 카드는 22%, 증권은 3%에 그쳤다.

아울러 지난해 말 기준 KB금융의 총자산은 329조654억원으로, 현대증권(23조7791억원)을 인수하면 2위인 NH농협금융지주(339조8412억원)를 제칠 수 있게 된다. 1위인 신한금융지주(370조5396억원)와의 격차도 좁혀진다.

윤 회장은 "이번 M&A는 인내와 전략적 선택에 따른 결과"라며 "1등 금융그룹 위상 회복이라는 임직원들의 열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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