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픈 한국 엘리트 '반기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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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이 낳은 최초의 세계 지도자 반기문. 그가 취임하자마자 서구 언론의 회의적 평가에 시달리고 있다. 확실한 예고도 없이 슬그머니 교수형에 처해진 후세인의 처지만큼이나 그의 처형을 두고 “처형은 각국이 법에 따라 정하는 문제”라고 한 한마디 답변 때문에 취임 직후부터 구설이 따르는 반기문 신임 유엔사무총장의 입장이나 초췌하긴 어슷비슷해 보인다.

아마도 그 답변을 나름대로는 원론적 답변이라 생각하고 내뱉었을 터인데 본인으로서는 뒤따르는 파장이 당혹스러울 법하다. 이는 아마도 그가 알던 세계가 미국 밖에도 더 있다는 것을 미처 생각지 못한 탓은 아닐까 싶다.

후세인을 실제로 처형한 행위자는 현 이라크의 집권세력인 이슬람 시아파이지만 그 뒤에 미국이 있다는 것을 세계인들이 공공연히 인정하고 있다. 그런 미국이 곧 세계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그런 미국의 논리에서 벗어난 어떤 대답도 하기 어려울 터이다.

미국은 후세인 처형의 기획자이기도 하지만 또 소위 선진국들 가운데 사형제도가 존속하는 단지 몇 나라 가운데 하나다. 그런 미국적 가치를 내재화했다면 기자들의 질문이 후세인 처형의 국제정치적 역학관계를 넘어 사형제도에 대한 그의 생각까지를 묻고 있다는 점을 깨닫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반기문은 대한민국 외교 수장을 역임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알고 있는 세계가 미국의 경계를 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달리 보면 대한민국 외교의 한계가 거기까지 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오늘날까지 대한민국의 외교는 거의 미국이라는 창구를 거치거나 그들의 렌즈를 빌려다 세계를 보는 식으로 이루어져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이 없으면 대한민국도 없다는 식의 발언이 대한민국의 지도급 인사들 입에서 거침없이 나오고 있는 게 오늘의 현실이다.

80년대 말 쯤에 대학가에는 한동안 성조기 밟고 지나가기가 유행한 적이 있다. 학교 교문 안 바닥에 대형 성조기를 그려둬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저절로 밟게 한 것이다.

당시 대중교통을 이용해 그런 대학 앞을 지날 일이 있었다. 같은 차에 타고 있던 한 30대 후반 쯤으로 보이는 여성이 마구 흥분해서 떠들어댔다. “저 놈들은 도대체 어느 나라 놈들이야. 경찰은 저런 반역자들을 안 잡아가고 왜 그냥 놔두는 거야”라고. 차에 타고 있던 다른 이들은 그저 묵묵부답이다.

그 순간의 당혹감을 뭐라 말할까. 남의 나라 국기를 짓밟는 행위에 대해 비판하는 것이야 그럴 법한 일이다. 하지만 그 여성은 성조기를 제나라 국기로 여기는 듯이 발언했다. 그 여성의 생각은 꽤 많은 이 나라 사람들의 생각이기도 할 터이다.

대한민국의 지식인 중 다수는 한국의 종주국으로서 미국을 받아들이고 있음을 사석에서 알게 모르게 흘리고 있다. 미국적 가치가 곧 세계의 표준적 가치인 양 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유학파들이 주류를 형성하고 있는 학계의 그런 미국적 가치의 내재화는 한국 사회의 성격 형성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런 지식인 집단의 사고방식은 실상 그 뿌리가 매우 깊다. 근세조선 개국 초기 정도전에 의해 이론적 토대를 확고히 한 사대주의는 근세조선 5백년을 규정했고 그 5백년간의 내재화 과정을 거치며 오늘날 대한민국 지식인들에게까지 집단적으로 대물림됐다. 명나라가 없는 세계를 일종의 붕괴상태로 인식하고 그런 세계를 구하기 위해 소중화주의로 무장했던 조선 유학자들로부터 현재의 대한민국 지식인들은 과연 몇 발자국이나 더 나아갔을까.

사대주의는 근세조선의 역사 시기를 고립의 시대로 만들었다. 다른 나라들에 대해서는 굳이 알 필요도 없고 모든 지식과 문명은 명나라를 통해 얻으면 족하던 사대부들이 근세조선의 지배세력이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지금 대한민국은 과연 얼마나 달라졌는가. 별반 달라진 게 없음을 반기문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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