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찬이 선 자리
정운찬이 선 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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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는 DJ의 구애를 받았던 전 서울대 총장 정운찬 교수가 이번엔 1년 앞으로 다가온 대선용 스타를 못 찾은 채 우왕좌왕하던 열린우리당의 구애를 받고 있다고 한다.

정치판 움직임에 민감한 금융권 인사들에게도 정운찬은 관심을 끌기 충분한 인물일 터다. 일단 그의 전공인 화폐 금융인데다 한 때 한국은행 근무 경력도 있다. 국민의 정부가 한국은행 총재로 앉히고자 했던 인물이라는 점에서 다른 어느 분야보다 더 관심이 쏠릴 법하다.

정치권에서 보자면 일단 상품성이 있는 참신한 정치 신인이라 할 만하다. 정치판의 때가 타지도 않았고 과격한 이미지는 없으나 개혁적 이미지는 갖춘 인물이다. 인기 없는 노무현 정부에 대해서는 서울대 총장으로서 서울대 입시안을 놓고 대결했고 최근에는 부동산 문제나 한미자유무역협정을 둘러싸고 비판적 목소리도 냈다. 그것만으로 호감을 표할 세력들도 적잖을 터이다.

게다가 한발 물러나 있던 이회창씨의 부산한 움직임에 미지근한 관심이라도 가진 소위 메인스트림 중 주요 축인 경기고 서울대 학맥에도 구미 당길만한 명품 브랜드로 보이지는 않을 런지 모르겠다.

그는 많은 한국인들이 경외하는(?) 대표적 명문 학벌의 소유자 중 한 사람이다. 경기고,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미국 프린스턴대학에서 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대표적인 한국사회 주류 학자들의 소사이어티인 금융학회, 경제학회, 사회과학협의회 회장을 역임했다.

여러 면에서 정치권은 그를 주의 깊게 지켜볼 충분한 이유를 갖고 있다. 현 정부 최대의 실패 요인으로 경제난을 꼽는 이들이 많다. 그래서 이명박 전 서울시장이 한나라당 대선 레이스의 선두주자로 나섰지만 그의 불도저식 개발경제론은 박정희식 이미지와 함께 찜찜해하는 세력도 적지 않다.

그런 점에서도 정운찬은 매력적인 상품이다. 경제정책에 있어서는 어쨌든 박정희시대의 비판적 지식인 그룹과 한편에 서서 개혁적 입장을 드러내 왔으니 묵은 내가 나지 않는다. 그런 그가 그동안은 정치권과 분명한 거리를 두어왔던 데 비해 최근들어 미묘한 표현의 차이가 나는 발언들을 순서에 맞게 쏟아내기 시작했고, 열린우리당의 앞선 구애가 시작된 것이다. 그리고 한나라당도 은근히 신경은 쓰이는 듯하다.

그러나 정운찬을 바라보는 시선이 한결같을 수는 없을 터이다. 그의 개혁적 이미지는 어디까지나 원외에 서서 비판자의 시선을 보일 때까지 유지될 수 있는 한계를 지닌다. 우리는 이미 여러 명의 학자들을 정치판으로 불러들였지만 본인들의 이미지만 구긴 사례를 충분히 봐왔다. 그 중엔 이홍구 전 총리와 같이 본인 스스로도 일정 정도 능동적으로 나선 예가 있지만 이수성 전 총리나 조순 전 서울시장 같은 경우 주변의 천거, 추대에 수동적으로 응하는 양 하는 모양새로 정치판에 발을 디딘 이들도 있다.

그들은 추대한 세력을 과도하게 믿고 대선까지 넘보다가 힘 한번 제대로 못쓰고 주저앉았다. 이유는 정치판이 그들의 바람처럼 우아한 자세를 지켜낼 판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치열하게 쟁투하고 또 일정 정도 스스로 자기 지분을 마련해야 그에 합당한 몫을 차지할 수 있는 장터이기도 하다.

노무현 정부가 보여주듯 개인적 조직 기반이 취약하면 대통령에게 주어진 권한조차 제대로 행사되기 어렵고 당연히 어떤 정책도 힘 있게 펼쳐낼 수 없다. 그리고 그 조직 기반은 당연히 지지에 따른 대가를 요구할 터이다. 정치신인들이 제대로 소화해내기엔 너무 거친 먹이다. 세상에 거저 먹을 떡이 어디 있으며 명예로 이길 전쟁이 또 어디 있겠는가. 떡고물의 유혹이 범람하는 정치판이라면 더 말해 무엇할까.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들 중 개혁적 이미지를 가진 이들이 제법 있다. 그 배경에는 박정희 정권하에서 개발경제를 주도하던 세력이 최장수 기록을 세운 남덕우 전 경제부총리를 필두로 소위 서강학파들이었던 상황과 무관하다고 보기 어렵다.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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