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술 소주병에 새겨진 신영복체 '처음처럼'…소탈과 친근
서민 술 소주병에 새겨진 신영복체 '처음처럼'…소탈과 친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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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돈이 필요하지 않다"…저작권료 대신 장학금 1억

[서울파이낸스 온라인속보팀] 우이(牛耳)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가 15일 영면하면서 시대의 지성인으로 존경받는 고인이 생전에 남긴 저작물들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진보적 경제학자인 신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한 뒤 육사에서 경제학을 가르치는 교관으로 일하던 중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그는 20년 20일을 복역하다가 1988년 광복절 특별 가석방으로 출소했다. 그가 출소 후 20년 간의 수감생활 이야기를 담아 출간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당시 젊은이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이외에도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신영복의 엽서’, '강의-나의 동양고전 독법’, ‘처음처럼’, ‘느티아래 강의실’ 등 많은 저서를 남겼다.

하지만, 대중들에게는 그가 자신만의 독특한 서체로 빚어낸 글귀들이 더 친숙하게 기억되고 있다. ‘처음처럼’, ‘아름다운 동행’, ‘함께 여는 새날’, ‘더불어 숲’, ‘함께 가자 우리’ 등이 모두 고인이 즐겨 쓰던 글귀들이다.

특히 고인이 생전에 즐겨쓰던 문구와 손글씨체가 그대로 담긴 소주 '처음처럼'에 얽힌 일화는 소탈하고 친근하게 다가오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그의 정신세계를 함축하고 있다.

소주 처음처럼은 2006년 2월 두산주류BG(현 롯데주류)의 신제품 소주로 시장에 처음 선보였다. 2005년 가을께 신제품 개발을 마친 두산주류는 마지막으로 '이름짓기'에 골몰하고 있었고, 당시 이 작업을 맡은 광고·홍보전문업체 '크로스포 포인트'의 손혜원 대표가 신영복 교수의 문구 '처음처럼'을 추천했다.

손 대표는 현재 더불어민주당의 홍보위원장을 맡고 있는 작명(네이밍) 전문가로, 최근 새천년민주연합의 새 당명 '더불어민주당'을 만든 인물이다.

한기선 당시 두산주류 사장은 손혜원 대표의 역량을 믿고 '처음처럼'을 소주 이름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최종적으로 이 문구와 글씨체(쇠귀체)의 '주인'인 신영복 교수의 의중을 확인하는 절차가 남아있었다.

손 대표로부터 제의를 받은 신 교수는 흔쾌히 '처음처럼' 문구·글씨체 사용을 허락했다. 그는 당시 "가장 서민들이 많이 즐기는 대중적 술 소주에 내 글이 들어간다는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마침내 2006년 2월 신 교수가 직접 쓴 '처음처럼'이 그의 저서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속 '새 그림'과 함께 소주병에 찍혀 세상에 알려졌다.

신 교수는 저작권료도 받지 않았다. 업체 측이 여러 차례 지불을 시도했으나 "나는 돈이 필요하지 않다"며 극구 사양했다고 한다. 결국 두산주류는 저작권료 대신 신 교수가 재직중인 성공회대학교에 1억원을 장학금 형식으로 기부했다.

이렇게 출시된 소주 '처음처럼'은 '돌풍'을 일으켰다. 2006년 2월 '처음처럼'이 나온지 불과 10개월만인 2006년 12월 두산주류의 소주시장 점유율은 두 배이상인 12%로 껑충 뛰었다. 두산주류의 이전 소주제품 '산'의 시장 점유율이 5%에 불과했던 점을 감안하면 당시 그 인기를 실감할 수 있다.

롯데주류 관계자는 "소주 처음처럼이 이처럼 대중적으로 큰 사랑을 받은데는 '처음처럼'에 담긴 고 신영복 교수님의 깊은 가르침과 친근한 이미지 등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며 "진심으로 고인의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연을 접하고 보니, 고인을 부석(浮石)같다고 한 누군가의 말이 더 실감있게 다가온다.

한편 고인의 장례는 성공회대학교 학교장으로 치뤄질 예정이며, 빈소는 성공회대학교 대학성당에서 16일부터 18일까지 운영된다. 영결식은 18일(월) 오전 11시 성공회대학교 대학성당에서 치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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