洋方을 선택한 집 값 처방전
洋方을 선택한 집 값 처방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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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포 남짓한 기간 동안은 집채 더미에 정부가 강타 당하는 한국판 허리케인을 보는 기분이었다. 8.31 대책을 내놓고 안심하던 정부가 두 달이 채 안돼 폭등하는 아파트값에 갈팡질팡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관련 부처와 청와대 수석비서실들이 줄초상을 치렀다.
단기간에 폭등하는 아파트 값이 문제였다지만 문제가 불거지는 과정들이 참 기묘했다.

당초 부동산 정책이 미리 발표회장을 만들고 일정을 예고하고 엄숙하게 발표문을 읽어나가는 방식이 아니라 기자실에 들른 장관이 슬그머니 흘리듯 신도시 추가 조성 발표를 할 때부터 심상찮은 반응들을 얻었다. 애시 당초 공급확대 발표를 그 따위로 가볍게 넘기려 했던 당사자 장관의 문제가 없다고 볼 수도 없지만 아무런 예상도 못하고 있다 당했다는 듯 언론매체에서 헉! 소리가 나는 듯싶더니 곧이어 예의 돌팔매질이 시작됐다.

그리고 판교 신도시 분양가가 높다고 아우성치는 틈에 서울시의 은평뉴타운 분양가는 판교를 비웃듯 분양가 고공행진의 진수를 보여줬다. 지자체까지 나서서 설치는 동안 무기력하게 방관만 하는 듯 보이던 정부가 이번에는 발표를 앞두고 발표보다 더 거창한 조명탄을 터트렸다. “지금 집 사면 후회할 것이다.”

말의 핵심은 집값을 떨어뜨려 지금 집값이 상투가 되게 만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을 테지만 그건 독 오른 고양이 앞에 쥐꼬리를 내보인 꼴이 됐다. 한마디로 말을 참 ‘싸가지 없이’ 했다. 당연히 북소리 요란하게 났고 그 소리가 가뜩이나 가슴에 불나던 사람들에겐 그야말로 ‘염장 지르는 소리’로 들렸음직하다.

덕분에 40:0패를 당한 열린우리당은 또 ‘열불이 났’을 터이다. 연속된 참패원인이 고스란히 정부에 있다고 믿는 듯한 이즈음의 열린우리당이고 보면 그들이 얼마나 속 끓였을지 안 봐도 뻔히 속사정이 드려다 보일 정도다.
 
그런 한편에서 분양가 상승의 주범으로 지목돼 욕먹는 지방자치단체장을 당원으로 끌어안고 있는 한나라당은 화살이 저절로 정부·여당을 향하니 또 얼마나 신이 났을까. 지자체장이 욕바가지 뒤집어쓰면 끝내 모르쇠로만 일관하기도 녹록치는 않을 터이다. 그런 점에서도 이즈음의 한나라당은 이래저래 복 텄다.

그런 어수선한 와중에서 부동산 정책의 방향을 둘러싼 각 섹터별 주장은 또 혼란스럽다.
무조건 ‘시장’이면 신앙한다는 입장인 한나라당이 공급 확대에 찬성하는 것이야 예상된 반응이지만 그에 머물지 않고 공급확대에 따른 일시적 부작용을 잡기 위한 고가 아파트 대상 부동산담보대출 규제 강화마저 ‘서민’을 방패삼아 반대한다.

정치권이야 여·야의 입장이 각기 그럴 법하다 치고 정부 내에 존재하는 두 갈래 그룹이 또 소동을 증폭시킨 일면도 엿보인다.
박 정희 정권 이래로 늘 그래왔듯 청와대 경제수석과 재경부장관의 자리는 정책의 균형을 위해 늘 다른 색깔을 가진 이들을 앉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서로를 효과적으로 견제하면 안정적인 정책 생산의 틀이 만들어지지만 자칫하면 양측이 갈등이 심각해져 비렁뱅이 자루 찢는 사단이 일어나기도 한다.

여기에 이즈음은 민간의 발언권이 더 강화돼 재계를 배경으로 한 경제연구소와 사회단체들의 각종 보고서에 성명서까지 더해져 목청들은 한껏 높아져만 간다.
그래서 이번 부동산 대책의 핵심은 공급물량이 돼야 할지 대출 규제가 돼야 할지 혹은 금리인상이 돼야 할지 주장하는 이마다 제각각이고 이에 덩달아 듣는 이들도 저 듣고 싶은 말만 듣게 되니 이 단계에서 정책은 그게 무엇이 됐든 백약이 무효인 상태가 되고 만다.

근본 체질을 강화할 한의학을 택한 채 당분간 인내할지 아니면 훗날 설사 부작용을 겪더라도 당장 고통이 참기 힘드니 양약 처방을 받을 것인지를 두고 지난 몇 년 많이 갈등했으나 여전히 해법을 정하지 못했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에 그랬듯 이번에도 양방의 승리로 끝났다. 지난 몇 년간 우리는 처음부터 의사를 불신한 환자가 돼 이 혼란을 자초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홍승희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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