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수장(水葬)시키는 야만
역사를 수장(水葬)시키는 야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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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홍승희기자] 우리는 ‘졸부’라는 표현으로 크게 돈은 벌었지만 문화적 소양이 부족한 이들을 비웃는다. 그런 우리나라가 지금 구석구석에서 졸부 노릇을 가차없이 해댄다.

그 대표적 사례의 하나가 당장 돈 들어오기 어렵다는 이유로 역사적 유물들을 거침없이 파괴하는 행위다. 대청호, 안동댐 등 수계에 손질이 가해질 때마다 고조선의 지표적 유물 가운데 하나인 고인돌들이 차례로 수장되는 비운을 겪었다.

이번에는 외국 자본의 놀이시설을 위해 100여기에 달하는 세계 최대 고인돌 집중지역인 춘천 중도가 다시 역사 매몰의 현장으로 둔갑하고 있다. 문화재청까지 돈벌이에 혈안이 된 지자체의 만행에 합세한 형편이라 웬만해선 저지하기도 어려운 형편이다.

역사학계에서는 흔히들 고조선의 유물이 빈약함을 들어 그 국가체제의 역사를 부정하려는 시도가 이어져왔다. 그러나 전 세계 고인돌의 대다수를 보유하고 있는 국내의 고인돌들이 차례로 수장, 매몰되어도 역사학계는 전혀 안타까워하지 않고 있어서 그 의도에 의심의 눈초리가 거둬지지 않고 있다. 음모론이 성행해도 할 말이 없을 행태들이다.

식민사학 청산을 외치는 목소리는 아직 강단 내에서 큰 힘을 얻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소리 내는 학자들도 근세사 위주로만 지적할 뿐 우리 역사의 뿌리인 고조선사에 대해서는 거의 손을 놓고 있다. 그 이유를 자료 빈곤으로 들고 있지만 잇단 고인돌의 훼손, 나아가 아예 수장시킴으로써 흔적을 지우기에 급급한 정부 당국에 대해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않고 있다.

세계 문화유산인 바미안 석불을 파괴한 알카에다의 야만적 행위에 세계가 분노했었지만 지금 중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파괴행위는 결코 그보다 덜하지 않은 만행이다. 오히려 그보다 더 오랜 역사를 지닌 고조선 유물의 파괴는 훨씬 야만적이다. 수 천 년 역사 유물을 아무렇지도 않게 훼손하는 데에 문화재를 보호해야 할 국가기관이 앞장을 서고 있으니 결코 우리가 문화국가임을 내세울 면목이 서질 않는다.

우리는 지금 세계 10위권의 국력을 자랑하기 바쁘다. 그러나 그 국력이라는 게 고작 GDP 얼마, 무역규모 얼마로 결정되는 것인가. 국방력 역시 세계 10위권 안에 든다지만 미사일 개발조차 미국의 허락을 구해야 하는 형편을 감안하면 그다지 미덥지 못한 숫자에 불과하다.

이탈리아 같은 나라는 솔직히 현재 우리가 국력의 지표로 삼는 항목들로 보면 우리보다 상위의 국가라고 보기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탈리아는 결코 약소국으로 보지 않는다. 그들이 보존하고 있는 역사적 유물들로 인해 그 나라의 역사와 전통의 힘을 세계가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무상급식 논쟁에서도 드러난 일이지만 우리는 지금 역사니 교육이니 하는 것들은 다 뒷전으로 밀리고 오로지 ‘돈’의 가치에만 매몰된 매우 천박한 자본주의 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교육은 칠판에 쓴 것 베끼고 외우는 것만이 전부인줄 알고 밥을 함께 나누고 식사 예절을 가르치는 것은 교육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나라, 남들이 이미 간 길을 가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것은 학문적이지 못하다고 폄훼하는 나라를 우리 손으로 만들고 있는 것이다.

100여기에 달하는 고인돌뿐만 아니라 생활유적지, 그리고 그 생활유적지에서 이제까지는 학계에서 무덤의 부장품으로만 그 의미를 축소시켰던 청동검이 출토된 중도 유적지는 나날이 파헤쳐지고 있다. 우리 시대가 이로 인해 얼마나 큰 역사적 죄를 짓고 있는지는 안중에도 없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당장 돈벌이가 될 것 같은 놀이시설 유치가 더 급하다 여길 수도 있으나 그 조차도 참 보기에 답답하다. 관광도시를 만들고 싶다면 놀이시설 하나 더 늘리는 것으로 충분한가. 그럴 리가 없다. 역사적 유물도 보존하면서 다른 한편에 놀이시설도 들어서면 더 확실한 관광도시의 면모를 갖출 수 있을 텐데 그런 생각은 전혀 없는 듯하다.

조급한 춘천시를 위해 제언 하나 하자면 고인돌 유적지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받고 지금 유치하려는 레고랜드는 다른 장소로 이전해 세우면 앞서 계획했다 무너진 애니메이션 도시의 꿈도 다시 불러일으키며 종합적인 관광도시로 거듭날 수 있지 않겠는가를 다시 생각해보라고. 춘천에 빈 땅이 없는 것도 아니라는데 충분히 고려해볼 만하지 않은가.

거기에 지금은 방치되고 있는 원삼국시대 고분군까지 묶어서 관광자원화해도 좋지 않은가. 그 땅에서 일어섰다 사라진 역사를 짓밟는 것은 그 땅에 사는 이들에게 거는 저주와 다를 바가 없음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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