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재벌 앞에서 작아지는 금융당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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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금융위원회가 때아닌 '재벌 특혜' 논란에 휩싸였다. 금융사 지배구조 문제를 개선하겠다며 만든 '지배구조 모범규준'에서 대기업 계열 금융사에 대한 규제 조항이 대폭 완화됐기 때문이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것은 '임원후보추천위원회(임추위)'를 은행권에만 우선 적용키로 한 부분이다. 당초 금융위는 이 제도를 상시 운영토록 해 CEO와 임원 선발 과정에서의 공정성을 확보할 계획이었다.

특히 이미 비슷한 취지의 CEO후보추천위원회를 가동하고 있는 은행권보다는, 재벌 총수의 뜻대로 금융사 인사가 결정돼 온 2금융권이 더 큰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제도였다.

하지만 금융위는 자산 규모 2조원이 넘는 모든 금융사를 대상으로 실시하겠다던 이 제도를 당분간 2금융권에는 적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수많은 금융 계열사를 보유한 삼성그룹을 비롯해 재계 곳곳의 반발이 거셌던 탓이다.

기존안에 비해 CEO 자격 요건을 완화한 것도 일종의 '대기업 봐주기'의 일환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대목이다. 지난달 발표한 기존안에는 '금융회사 업무에 대한 경험과 지식'을 CEO 필수 자격으로 반영했지만, 확정안에서는 '금융에 대한 경험과 지식'으로 바꿨다.

결국 금융사에 근무하지 않았더라도 해석에 따라 금융사 CEO가 될 수 있게 됐다. 금융업에 이렇다 할 일가견이 없는 대기업 그룹사 임원이 자회사 CEO로 내려올 가능성이 열린 셈이다.

물론 신제윤 금융위원장은 "2금융권에는 (임추위 제도를) 중장기적으로 적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겠다"는 단서를 붙였지만, 사실상 금융권에서는 "대기업그룹의 압박에 한발 뺀 것"이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금융권에서는 오히려 '주인 없는' 은행과 금융지주사의 규제만 더 강화됐다는 지적도 나온다. 물론 'KB 사태'를 기점으로 금융사 지배구조의 투명성을 강화하려는 금융당국의 노력은 지지할만한 부분이다. 다만 뚜렷한 오너가 없는 은행권에는 엄정한 칼날을 들이대면서도, 정작 전횡의 부작용이 높은 재벌그룹에는 뒷걸음질치는 '두 얼굴'의 행정은 선듯 받아들이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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