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회 - 오보
17회 - 오보
  • 서울금융신문사
  • 승인 2003.04.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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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물산이 오늘 돌아 온 어음을 막지 못했다고 하던데 사실입니까? 그러면 부도 처리되는 건가요?“

박 차장이 대충 짐작을 하면서도 다시 한번 되물었다.

“실례지만 어느 통신사라고 하셨죠?”

“블룸버급니다. 블룸버그. 경제 전문 국제통신사요. 김 대기 기잡니다. 금융 쪽을 맡은지 얼마 안 돼 아직 거기까지 인사는 못했습니다만 저, 대한 경제 김 차장 소개로 인사드립니다. 대학 동기고 절친한 친구거든요.”

김 대기가 그냥 물어서는 안되겠다 싶었던지 충석의 이름을 팔고 나온다. 박 차장이 드디어 걸려들었다 생각하고 목소리를 깔며 말한다.

“아. 예. 김 충석 차장이요. 잘 알지요. 그런데 동일건은 사실입니다. 그동안 워낙 부실이 많아 건드리지 못했는데. 이제는 안되겠다고 경영진에서 결단을 내린 모양입니다. 파장이 좀 클 것 같군요. 저희도 걱정입니다. 사실 피해는 우리보다 동방은행이 더 클겁니다. 동방은행의 여신 규모가 우리 보다 더 크거든요. 동일이 김 기자님도 잘 아시다시피 정치권에 배경이 좋잖습니까.”

박차장이 묻지도 않은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자 김 대기가 반색을 하는 표정이 수화기 너머로 보이는 것 같았다.

“총여신 규모가 얼마나 됩니까?”

“달러로 치면 한 은행에 한 10억 달러 되지요. 아마 잘은 몰라도 그게 다 부실 채권화 되는 거로 봐도 되니까 은행으로서는 치명적이라고 봐야죠. 큰일입니다. 지금 우리나라 사정으로 봐서는 동일이 부도가 나는 것보다 은행들의 부실이 늘어 국제적으로 신인도가 떨어지는 것이 더 큰 문젭니다. 김 기자님도 잘 아시다시피.”

박 차장은 한참 더 대기가 묻지도 않은 이야기들을 중언부언 늘어놓고서 다른 전화가 와서 미안하다고 궁금한 것이 있으면 다시 전화를 달라고 말하고는 얼른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아닌게 아니라 이미 충석으로부터 걸려온 전화가 박차장이 전화 끊기를 기다린지 한참 되고 있었다.

“응. 김 차장. 지금 막 김 대기씨와 통화를 했어요. 어디 있는 거요. 언제 올 건데. 지금? 블룸버그를 띄워 놓고 기다리라고. 해킹 전문가는? 알았으니 빨리 오시오.”


얼마 후 충석과 박 차장은 어두침침한 대성은행 비서실에서 컴퓨터 모니터를 바라보며 종이컵에 담긴 양주를 홀짝이고 있었다.

“언제 뜨는거요?”

“좀 기다려 봅시다. 기사 쓸 시간은 줘야하니까. 두 번째 전화 온지 얼마 안됐으니까 시간이 좀 걸릴거요.”

충석이 마른 침을 삼키며 우일의 핸드 폰 번호를 찾아 눌렀다.

충석이 종이컵에 담긴 양주를 다 비우고서도 한참만에야 우일이 전화를 받았다.

“우일이냐? 나 김 선밴데, 지금 어디 있는 거냐? 통화 가능하냐? 마침 잘됐군. 지금부터 블룸버그 열어 놓고 프린터 연결하고 기다리라구. 리차든가 피턴가 하는 놈들은 지금 어디 있는데? 전달 가능한거야? 알았으니까 떠나지 말구 자리에 붙어 있어.”

담배를 안주 삼아 양주를 거의 절반 정도 비우고 나서야 모니터에 ‘한국 동일그룹 부도 직면, 주거래 동방, 대성은행 대외 신용도 추락 우려. 외자 유치 차질 빚을 듯’ 등의 제목으로 속보 기사가 돌아가기 시작했다.
“김 차장 기사 떴어.”

박 차장이 피우던 담배를 비벼 끄며 비명을 지르듯 외마디 소리를 냈다.
충석이 얼른 속보기사를 클릭했다. 기사를 한번 읽어 본 충석은 만족한 미소를 지으며 우일의 핸드폰 번호를 찾아 다시 꾹꾹 눌렀다.

“우일이냐. 기사 떴다. 확인해라. 뭐, 보고 있다구? 그래, 빨리 프린트해서 돌려. 뭐? 어떻게 전하냐구. 야 임마. 그걸 나한테 물으면 어떻게 해. 니가 알아서 해야지. 돌리구 다시 전화하라구.”

충석은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박 차장을 보고 말했다.

“해킹 전문가는 필요 없을 것 같은데. 기사가 시원찮으면 바꿔치기 할려고 했는데, 기사 내용이 박 차장, 당신이 불러준 것과 조금도 틀리지 않구만. 김 대기 이 친구 나나 당신을 너무 믿은 것 같아. 조금 미안 한데. 하기야 금융권을 맡은지 얼마 안돼 아직 감각이 없을 거야.”


우일은 모니터의 구석에 있는 프린트 버튼을 클릭하고서는 천천히 휴대용 프린터가 종이를 잡아먹는 것을 지켜보았다.

‘이것을 저 피터 자식한테 어떻게 전해주지.’

우일은 프린터에서 뽑혀져 나온 기사를 가지고 부채질을 하며 머리를 굴렸다. 조금 전까지도 시끄럽게 떠들던 리차드는 다시 회의장에 들어 갔는지 보이지 않고 피터 녀석만 창가에 서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이봐, 피터.”

그동안 몇 차례의 회식으로 안면을 트고 스스럼없이 이름을 부르게 된 우일이 마치 지나가는 말투로 창밖을 바라보며 연기를 품던 피터를 불렀다. 피터가 고개를 돌리며 왜 불렀느냐는 눈짓을 해 왔다.

“당신네들도 특정한 언론기관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거나 아니면 적대적인 경우가 있나?”

피터가 갑자기 무슨 엉뚱한 소리냐는 듯이 우일이 있는 쪽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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