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건설사들, '제비뽑기'로 호남고속철 낙찰 덜미
대형건설사들, '제비뽑기'로 호남고속철 낙찰 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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檢, 건설사 14곳·임원 14명 불구속 기소

[서울파이낸스 성재용기자] 수조원의 혈세가 투입된 호남고속철도 공사가 사실상 대형건설사들의 '제비뽑기'로 낙찰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해당 대형건설사 법인 14곳과 영업담당 임원으로 근무한 14명을 불구속 기소했다.

4일 검찰에 따르면 2009년 6~7월께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조만간 '1건설사 1공구 낙찰'을 원칙으로 호남고속철도 노반 신설공사 13개 공구를 발주한다는 소식이 공단 홈페이지와 업계 신문기사 등을 통해 알려졌다.

이를 접한 '빅7' 건설사(GS건설, 대림산업, 현대산업개발, SK건설, 대우건설, 현대건설, 삼성물산)의 관급공사 수주업무 실무자 7명은 서울역 부근 GS역전타워의 레스토랑에 모였다. 이들은 '불필요한 출혈 경쟁을 줄이고 각 건설사가 골고루 보다 손쉽게 낙찰을 받도록 하자'며 곧바로 구체적인 담합 방식을 계획했다.

이들은 업체 규모와 철도시설 공사 경험에 비춰 이번 입찰에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국내 건설사 21곳을 임의로 골라 A·B·C 세 개 그룹으로 나눴다. 기존 '빅7'에 합세한 건설사는 두산건설, 쌍용건설, 동부건설, 삼환기업, KCC건설, 롯데건설, 한진중공업, 금호산업, 한라건설, 코오롱건설, 경남기업, 남광토건, 삼부토건, 삼성중공업 등이다.

이 가운데 이번에 기소된 건설사는 '빅7'를 비롯해 두산, 쌍용, 동부, 삼환, KCC, 롯데, 한진, 금호 등이며 한라, 코오롱, 경남, 남광, 삼부, 삼성중공업 등 6개사에는 벌금 3000만~5000만원에 업체 관계자 7명을 1000만~3000만원에 각각 약식 기소했다.

빅7이 속한 A그룹에는 공구 5곳, 한진중공업 등 5개 건설사가 속한 B그룹에는 공구 4곳, C그룹 9개 업체에는 공구 4곳을 배정한 뒤 그룹별로 추첨을 통해 공사를 맡을 업체를 선정키로 했다.

이들은 회합을 마치고 나머지 14개 회사에 연락해 담합에 참여하겠다는 승낙을 받아냈다. 이어 잇따라 그룹별로 제비뽑기 추첨이 진행됐다.

A그룹에는 SK건설, 대림산업, 현대산업개발, 삼성물산, GS건설에 각 1개씩 공구가 배정됐다. B그룹 업체들도 레스토랑에 모여 추첨한 결과 두산건설, 쌍용건설, 한진중공업, 금호산업이 공구를 따냈다. C그룹에서는 롯데건설, 동부건설, KCC건설, 삼환기업이 뽑혔다.

공구를 배정받은 업체들은 투찰가를 다른 업체들에 미리 알려주면서 높은 가격에 들러리 입찰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다른 공구에서는 들러리 입찰로 '품앗이'를 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이들 업체는 당시 최저가 경쟁 입찰의 평균 낙찰률 약 73%를 5%p가량 상회하는 77~79%대의 낙찰률로 공사를 따낼 수 있었다. 1개 공구당 투찰가가 1000억원대 중반에서 많게는 3000억원에 이르는 점에 비춰 공사비를 수십억~수백억씩 더 챙긴 셈이다.

반면 추첨에서 떨어진 회사는 높은 가격에 들러리를 서는 대신 해당 공구에 구성원 사업자(일명 '서브사')로 참여하거나 다음번에 비슷한 건설공사에서 낙찰을 받을 수 있도록 한 것으로 드러났다.

검찰은 이들 21개사 중 담합 사실을 자진신고(리니언시)한 삼성물산을 제외한 20개사를 기소하면서 "건설사들이 부당한 이득을 챙기거나 공정한 가격결정을 저해할 목적으로 입찰자간 미리 조작한 가격으로 공사에 입찰했다"라고 밝혔다.

호남고속철도 건설공사는 길이 184.5㎞의 철도망을 구축하는 공사로, 사업비가 8조3500억원에 달한다. 2006년부터 추진돼 올해 완공을 목표로 하고 있다. 공사는 19개(최저가낙찰제 13개+대안·턴키 6개) 공구로 나눠서 발주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지난 7월 호남고속철 입찰에 3조5980억원 규모의 담합 사실을 적발하고 업체들에게 시정명령과 함께 4355억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이는 역대 전체 담합사건 중 두 번째, 역대 건설업계 담합사건 중 가장 많은 액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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