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댁의 난방비는 안녕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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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성재용기자] 지난달 배우 김부선씨가 아파트 반상회에서 이웃 주민과의 폭행사고로 피소됐다. 본 사건의 발단은 난방비. 김씨가 일부 가구의 경우 난방비가 실사용량보다 낮은 반면 다른 일부 가구에는 과도하게 난방비가 청구되고 있다고 의혹을 제기하자 실랑이로 번진 것이다.

서울시에 따르면 김씨가 거주하는 서울 성동구 옥수동 중앙하이츠 아파트의 2007년 1월부터 2013년 3월까지 27개월분 난방비를 점검한 결과 총 536가구 가운데 '0원'으로 측정된 사례는 300건에 달했다. 전체 가구 평균 난방비가 18만원임에도 절반도 안 되는 9만원을 넘지 않는 건수도 2398건이나 나타났다.

사실 난방비 누락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인터넷 검색창에 '난방비 0원'이란 검색어만 넣어도 갖가지 사례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즉 이미 이 문제는 지적되고 개선됐어야 함에도 입주민들과 관련 책임자들이 이를 쉬쉬하고 방치해온 도덕적 해이에 책임을 물어야 하는 상황인 셈이다.

90년대 말 이후 지어진 아파트 대부분은 이미 개별난방을 택하고 있지만 이전에 지어진 아파트는 여전히 중앙기계실에서 난방과 온수를 파이프를 통해 각 가구로 공급하는 '중앙난방방식'인 경우가 많다. 이 경우 단지 1개당 난방비는 각 가구가 쓴 난방량에 따라 배분되며 이는 각 가구에 설치된 난방계량계에 측정된다. 이 때 계량기는 열량계를 주로 사용한다.

문제는 여기에 있다. 열량계 내부 배터리가 닳거나 의도적으로 빼는 경우 열량계 자체가 작동하지 않아 누구라도 손쉽게 '난방비 0원'을 조작할 수 있다. 비단 김씨가 거주하는 옥수동 아파트만의 문제가 아닌 셈이다.

이 같은 문제가 계속 지적되자 2012년 당시 지식경제부는 건설업체가 난방계량기를 설치한 뒤 배터리 교환부위를 봉인하거나 봉인지를 부착하고 입주자가 봉인지를 뜯어 조작한 사실이 적발되면 할증 난방비를 부과토록 관련법을 개정했다.

하지만 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도덕적 해이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문제를 야기한 것이다. 부정사용은 절도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것이 법조계 판단이지만, 부정사용이 들통 나더라도 할증액 산정도 입주자대표회의에 일임했기 때문에 입주자대표들이 '짬짜미'를 통해 이를 묵인할 경우 적발도 어렵다. 또 봉인지 관리주체가 관리사무소라는 점 역시 불안하다.

결국 각자의 양심에 맡겨야 할 문제이지만, 서울시가 적발한 김씨의 옥수동 아파트 입주민들은 '정남향'과 '외출시간이 길다'는 말도 안 되는 핑계로 '난방비 0원'이라는 독이 든 성배를 내려놓지 않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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