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사태' 일단락…금융당국 행정난맥상 '도마 위'
'KB사태' 일단락…금융당국 행정난맥상 '도마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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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행장 동반 퇴진…오락가락 제재가 화 키워

[서울파이낸스 정초원기자] 장장 4개월간 이어진 'KB사태'가 결국 두 수장의 퇴진으로 막을 내린 모습이다. 금융당국의 3개월 직무정지(중징계) 처분에 불복해 행정소송까지 제기했던 임영록 KB금융지주 전 회장이 결국 대표이사 회장직에서 해임된 것이다.

앞서 이건호 행장은 금융감독원의 중징계 처분이 내려지자 곧바로 자진사퇴를 결정했다. 일단 임 회장과 이 행장의 동반퇴진으로 KB금융 내분은 일단락됐지만, 사태수습 과정에서 금융당국의 행정난맥상이 드러나면서 정부가 오히려 화를  키웠다는 비판의 목소리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경영불안 수습 국면…후임 CEO 인선 작업 속도 낼 듯

18일 금융권에 따르면 KB금융 이사회는 이날 새벽 긴급 이사회를 통해 임 회장의 해임안을 의결했다. 사외이사들은 임 회장이 스스로 용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기 위해 막판 설득에 들어갔지만, 결국 임 회장이 자진 사퇴를 거부하면서 해임 안건을 상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사회 내부에서도 의견이 엇갈려 표 대결에 부친 결과, 7명이 찬성하고 2명이 반대해 해임안이 가결됐다.

현재 임 전 회장이 진행하는 금융위원회 대상 직무정지 가처분신청과 행정소송 결과가 남아있지만, 추후 가처분신청이 받아들여지더라도 이미 임 전 회장의 대표이사 자격이 상실된 탓에 업무에 복귀할 수는 없게 됐다. 임 전 회장이 갖고 있는 '이사의 직'은 당분간 유지될 전망이지만, 의결권을 갖고 있을 뿐 사실상 경영 참여는 할 수 없다.

이에 따라 KB금융은 오는 19일 열리는 임시 이사회를 시작으로 차기 회장 선임 논의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미 KB금융 회장 직무대행인 윤웅원 부사장과 KB국민은행장 직무대행인 박지우 부행장을 비롯해 윤종규 KB금융 전 부사장, 김옥찬 KB국민은행 전 부행장, 김기홍  KB국민은행 전 부행장 등 내부 또는 내부출신 인사들이 유력 후보군으로 떠올랐다.

특히 이번 사태의 근본 원인으로 '낙하산 인사'가 지목돼 온 만큼, 외부 출신을 배제하고 KB 내부에서 새 수장을 선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KB국민은행 노조도 "KB금융 경영진의 공백은 앞으로 관치 낙하산 인사를 영원히 추방하고 자율경영을 쟁취할 수 있는 기회"라며 "회장후보자 인선 과정에서 공정성을 보완하라"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전직 관료나 정권 창출에 기여한 금융인이 KB금융 회장 자리에 앉게 될 것이라는 관측과 함께 벌써 일부 인사의 이름이 거론되고 있다. 이는 이번 사태의 이면에 여전히 관치금융의 그림자가 크게 작용했다는 시각과 무관치 않다는 지적이다. 그간 금융당국이 제재 결과를 상황논리에 의해 세 차례나 번복한 데다, 임 회장의 사퇴를 둘러싸고 전방위 압박을 가해왔다는 점도 이같은 관측에 힘이 실리는 이유로 작용하고 있다. 일부 사외이사들이 임 회장의 해임을 강하게 반대했던 배경 또한 '또 다른 관치'라는 판단 때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더 이상의 낙하산 인사는 절대 금물이라는 여론이 비등하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이번 'KB사태'를 수 년전 있었던 '신한사태'와 더불어 우리 금융사에 기록될, 그래서 다시는 재연되지 말아야 할 '오점'으로 규정하는 분위기다.

실제로 이번 일로 KB은행을 비롯한 KB금융그룹은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KB맨들이 입은 상처 또한 너무 크다. 비단 KB금융만의 문제가 아니다. 글로벌 경쟁시대를 맞아 갈 길 바쁜 우리 금융산업의  앞날을 위해서도 그렇다는 지적이다.

때문에 회장과 은행장이 됐든 아니면 '우리금융' 같은 은행장 겸직 회장이 됐든 후임 KB금융 CEO 인선에 관치나 정치인사가 또 다시 개입돼서는 안된다는 게 금융권의 중론이다. 만약 이번에도 '힘있는 실세'라거나 '효율성'을 내세워 과거의 구태가 재연된다면 거센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말까지 들린다.

동시에 금융당국도 상황의 엄중함을 직시하고 이같은 여론에 부응하는 합리적인 인사 시스템을 구현하는데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할 것이라는 지적이다. KB금융의 최대의 적으로 부각된 CEO 리스크를 제거하는 것이 현 시점에서 금융당국이 해야할 최선의 역할이 돼야한다는 주문이다.                    

◇'新 관치' 논란 속 금융당국 책임론 고조

이는 금융당국이 이번 사태의 책임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는 비판적 시각과도 맞물려 있다. 사건의 발단은 KB의 내부 갈등이었지만, 결국 금융당국이 제재를 수개월간 지연시키고 징계 결과까지 수차례 뒤집으면서 혼란이 증폭됐다는 지적이다.

앞서 금융감독원은 주전산기 논란과 관련 특별검사 이후 임 전 회장과 이건호 전 KB국민은행장에게 '문책 경고(중징계)'를 사전 통보했지만, 3개월째에 접어든 이후에도 별다른 제재 결과를 내지 못한 채 제재심의위원회를 지속했다. 결국 제재심 의원들은 지난달 22일 두 CEO에게 '주의적 경고(경징계)'로 징계 수위를 하향 조정했지만, 이 결과를 최수현 금감원장이 2주만에 '문책 경고(중징계)'로 다시 높였다.

여기에 임 전 회장의 경우 결과가 한번 더 바뀌어, 금융위원회로부터 '직무정지 3개월'이라는 중징계를 받기에 이르렀다. 이는 금감원이 내린 문책경고보다 한 단계 높은 수위로, 임 전 회장의 사퇴를 압박하기 위해 당국이 초강수를 던진 것으로 풀이됐다. 임 전 회장이 금감원의 중징계 결론에도 불복하자, 징계 수위를 상향해 사실상 그의 손발을 묶겠다는 의도라는 게 금융권의 시각이었다.

결과적으로 임 전 회장에 대한 제재는 사전통보 당시의 '문책경고'를 시작으로 △주의적 경고(제재심) △문책경고(금감원장) △직무정지 3개월(금융위) 등 결정권자에 따라 세 차례나 오락가락했다. 이 때문에 금융당국의 제재 시스템이 합리성과 일관성을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실제 임 전 회장도 이같은 제재 결과 번복에 대해 "금감원 제재심에서 2개월이 넘도록 심도 있게 검토해 경징계로 판단한 결정을 금감원장이 단 2주만에 중징계로 바꾼 후 다시 금융위에서 한 단계 높인 것으로, 결코 납득할 수 없다"는 이유로 반발하기도 했다.

◇높아진 낙하산 반대 목소리…"'관치·정치인사' 청산 계기돼야"

더구나 당초 금융위 내부에서는 금감원의 제재 과정에 대해 회의적인 목소리가 적지 않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해관계자들 사이에 이렇다 할 법적 실책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금융회사 내부적으로 해결해야 할 경영 문제를 대상으로 당국이 징계한다는 것에 대해 부정적 시각이 제기됐던 것. 이같은 초기 기류를 감안하면, 임 전 회장에 대한 금융위의 최종 판단에 대한 신뢰는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정성태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당국이 금융사의 일에 지나치게 간섭한다면 금융사들이 자율적으로 내부 역량을 키우기 어려워진다"며 "큰 틀에서의 규제 방향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일상적인 경영까지 일일이 간섭하는 것은 안 된다"고 지적했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는 "이번 이슈는 감독당국이 그렇게까지 나설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며 "주전산시스템 문제는 내부적으로 알아서 해야지, 국민이 다 알아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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