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착오적 발상"…재건축 규제완화 부작용 '우려'
"시대착오적 발상"…재건축 규제완화 부작용 '우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문가들 "무분별한 재건축 과잉 조장"
"강남 등에 특혜 집중…주거안정 훼손"

[서울파이낸스 성재용기자] 정부가 지난 1일 아파트 재건축 연한을 현행보다 10년 단축하고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하는 등 재건축 사업 추진이 쉽도록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국회 계류 중인 주택 분양가상한제 탄력 적용 방안,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폐지 방안을 제외하고 정부가 주택시장과 관련해 풀 수 있는 대부분의 '빗장'을 풀었다는 평이다. 재건축 연한 단축과 안전진단 완화는 국회통과가 필요 없는 시행령 개정 내용이다.

그러나 일부 전문가들은 기대보다 부작용을 우려하고 있다. 서울 강남권 등 일부 지역에 혜택이 집중되는 것은 물론, 재건축으로 인한 경제적 이익이 점쳐지는 지역에서 노후화가 덜한 아파트까지 헐고 다시 짓는 등 비정상적인 현상이 나타날 것이라는 지적이다. 여기에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겨 가계부채 증가, 투기 촉진 등 문제가 심화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나온다.

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이번 대책에서 지방자치단체의 조례에 위임했던 아파트 등의 재건축 연한을 30년으로 낮췄다. 주택시장 활황기인 2003년 재건축 연한이 20년에서 40년으로 늘어난 뒤 지금까지 유지되면서 재건축시장이 위축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해서다.

대책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마다 준공 후 연도에 따라 20~40년으로 돼 있는 재건축 연한의 상한이 모두 30년으로 줄어든다. 상한을 40년으로 정한 서울, 경기, 부산, 인천, 광주, 대전 등이 당장 단축 효과를 보고 앞으로 준공하는 아파트는 30년만 지나면 재건축을 추진할 수 있게 된다.

1987년에서 1991년 사이 용적률이 상대적으로 낮게 적용돼 준공된 전국 100만여가구 아파트가 수혜를 입을 전망이다. 서울에서는 목동 신시가지, 상계동 주공아파트, 서초동 삼풍아파트 등 18만8000가구의 재건축 시한이 빨라진다.

이와 함께 안전진단 때 '주거환경'의 평가 비중을 현행 15%에서 40%로 높여 구조안전에 큰 문제가 없어도 주차장 부족, 배관 노후화 등으로 생활 불편이 클 경우 재건축을 손쉽게 할 수 있도록 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부동산 가격 상승을 부추겨 가계부채 증가, 투기 촉진 등 문제가 심화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최승섭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부동산감시팀 부장은 "이번 정부의 대책은 대다수 서민을 위한 주거 안정책과는 거리가 멀고 특정 지역의 이익 실현을 위한 투기책이자 건설사들의 일감을 확보하기 위한 대책으로 보인다"며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을 완화하면 사업성이 있는 강남과 1기신도시를 중심으로 무분별한 재건축 추진이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변창흠 세종대 행정학과 교수도 "경제적인 측면에서 사업성이 있는 서울 강남권 등은 노후도가 심각하지 않더라도 경제적인 평가로 사업 추진의 길을 열어줘 재건축을 활성화시키겠다는 의도"라며 "대상 지역에서 재건축 시한이 10년이나 당겨지는 효과가 있어 해당 지역의 집값 상승이 우려된다"라고 말했다.

조명래 단국대 도시계획과 교수 역시 "재건축 활성화 조치가 단기적으로는 도움이 되는 것 같지만 장기적으로 도움이 되지 않고 시장 안정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재건축 연한을 30년으로 낮춘 조치는 세계적인 흐름과도 맞지 않고 시대에 역행하는 조치"라고 말했다.

특히 재건축·재개발이 증가함에 따라 그로 인한 자원낭비 문제 역시 시대에 역행한다는 지적이다. 변창흠 교수는 "평소 유지관리를 철저히 하면 상당기간 더 사용할 수 있는 건물을 전면 철거하고 다시 짓는데 국가적으로 낭비되는 자원과 건축쓰레기를 처리하는 비용이 엄청날 것"이라고 말했다.

조명래 교수도 "부동산 거품의 주범인 재건축 과잉을 조장하고, 주택 수명이 날로 늘어가는 세계적 추세와도 거꾸로 가는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실제로 영국 128년, 미국 72년, 일본 54년 등 선진국들의 아파트 교체 수명이 우리나라 평균(27년)보다 25~100년가량 긴 것을 감안하면 세계적인 추세와 거꾸로 가는 대책이라고 볼 수 있다. 내년부터 100세 장수 아파트 인증사업을 하겠다고 밝힌 기존 정부 입장과도 배치된다.

세입자들의 주거안정이 더욱 불안해졌다고 지적했다. 조명래 교수는 "일거에 주택을 허무는 방식의 재건축이 확산되면 도시는 물론, 공동체도 수명이 끊기는 것"이라며 "저소득층이나 세입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추가 조치가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변창흠 교수도 "시장이 세입자의 주거 안정을 보장하지 않는 상황에서 정부가 저소득층·세입자를 위한 공공임대주택 확대, 주거급여 확대 등 조치는 대책에서 빼놨다"며 "세입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확대하는 조치도 함께 고려하는 정책적 배려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실제 시장에서도 당장 재건축을 추진하는 단지는 많지 않을 전망이다. 안전진단과 재건축 연한 기준의 문턱이 낮아지더라도 기존 아파트의 용적률이 200% 안팎인 경우 일반 분양물량이 적어 사업성을 확보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이미 재건축 사업을 본격 추진하는 강남구 개포 주공, 송파구 가락 시영, 강동구 고덕 시영 등 강남구 저층 아파트들도 최근 조합원들이 내야 할 추가 분담금이 예상보다 많게는 1억원 가까이 늘어나면서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권일 닥터아파트 리서치팀장은 "주택경기 침체에 사업이 지연되고 일반 분양가도 높게 올리지 못하면서 조합원 부담이 애초 기대했던 것보다 크게 늘었다"며 "지난해 말부터 재건축 아파트값이 상대적으로 많이 오른 것도 매수자에게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천구 목동 S공인 관계자는 "목동 아파트는 평균 용적률이 160% 이하로 개발 여력이 충분한 편이다. 실제로 연초부터 매매가도 더 이상 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에 거래가 회복돼 급매물이 소진되고 있다"면서도 "재건축에 대한 기대감이 큰 편이지만 규모가 워낙 커 실제 사업이 실현되기까지는 시간이 상당히 소요될 것"이라고 말했다.

노원구 상계동 J공인 관계자도 "집값이 높은 강남권에서 재건축을 해도 추가분담금을 내야하는 상황에서 상계동에서 재건축이 성공할 것이라고 보는 집주인은 드문 편"이라고 말했다.


이 시간 주요 뉴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