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박자 늦은 '디젤차 열풍'…잘못된 환경규제 탓?
한박자 늦은 '디젤차 열풍'…잘못된 환경규제 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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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선 환경규제로 디젤차 기피 현상

[서울파이낸스 송윤주기자] 올해 국내 자동차 시장은 '디젤차 열풍' 없이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수입차 시장에서는 이제 10대 중 7대가 디젤차이며 국내 업체도 소비자의 선호를 고려해 디젤 세단을 경쟁적으로 출시하고 있다. 그런데 오히려 디젤차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유럽에서는 디젤차가 대기오염의 원인으로 지목돼 규제를 강화해 구매 기피 현상을 보이고 있다. 이에 국내 정부가 디젤차에 지나친 특혜를 부여해 글로벌 시장흐름에 역행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 현대차 그랜저 디젤
14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국내 수입차 시장에서 디젤차량의 등록대수는 올해 7월까지 누적 기준 7만6636대로 지난해 동기 5만3916대보다 42.1% 늘었다. 이에 디젤차는 전체 수입차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2011년 35%에 불과했으나 2012년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서더니 올해 7월 누적기준으로는 68.2%로 올라섰다.

국산차 역시 SUV 열풍으로 디젤차 판매가 늘면서 올 1분기 가솔린 차량은 4% 가량 줄어든 반면 디젤차는 32% 증가했다. 국내 자동차 시장에서 신차 대비 디젤차 비중은 2009년 30.3% 수준에서 지난해 43.5%까지 늘었다.

디젤차 인기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BMW, 메르세데스-벤츠 등 독일 업체가 디젤차 강세로 안방 시장을 공략하자 국내 완성차업체들도 디젤 세단 경쟁에 뛰어들었기 때문이다.

국내 디젤 세단에 대한 소비자의 호응도 뜨겁다. 올해 처음 말리부 디젤로 국내 시장에 디젤 세단을 선보인 한국지엠은 한국지엠은 출시 한달 만에 판매 목표치를 넘는 3000대를 판매하며 디젤 수입의 에로사항으로 판매를 중단하기까지 했다. 지난 6, 7월 연달아 출시된 현대차 그랜저 디젤과 르노삼성의 SM5 D 역시 구매자가 몰려들면서 하반기 주력 모델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 르노삼성 SM5 D에 장착된 1.5 dci 디젤 엔진 (사진 = 송윤주기자)
◇ "대기오염 주범"…유럽선 탈(脫)디젤 현상 뚜렷
반면 디젤 차량의 본고장이라 불리는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디젤 차량을 소비자들이 디젤 차량을 기피하는 현상이 늘고 있다. 전통적인 디젤 강국으로 꼽히는 프랑스, 스위스, 룩셈부르크, 벨기에 등에서 디젤 수요 감소가 눈에 띈다. 올해 1분기 디젤차 판매량 기준 프랑스와 스위스는 전년 동기보다 3.3%, 5.5% 각각 줄었으며 벨기에와 룩셈부르크도 각각 7% 감소했다.

디젤 수요가 줄어든 것은 디젤 차량에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NOX)이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부터다. 노르웨이대기연구소(NILU)는 최근 "디젤차가 인체에 해로운 이산화질소(NO₂)를 많이 배출한다"며 "실생활에서 운행할 때 교통체증이 심한 곳에서 새 디젤엔진의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정속 주행 때보다 훨씬 많이 나온다"고 발표했다.

디젤차는 가솔린 차량에 비해 질소산화물(NOx)을 4배 이상 배출해 대도시 미세먼지와 질소산화물 오염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질소산화물은 폐기종, 기관지염 등 호흡기 질환의 직접적 원인이며 오존층을 파괴해 산성비와 광화학 스모그를 생성한다. 또 탄소화합물과 결합해 대기 중 미세먼지 생성을 돕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같은 심각성을 인식해 디젤엔진 배기가스를 석면, 다이옥신 등과 같은 '1등급 발암물질'로 규정했다.

이에 유럽에서는 지난해 새로운 자동차 유해가스 배출기준(유로6)를 마련해 적용하고 있다. 오는 9월 우리나라에서도 적용되는 유로 6는 질소산화물(NOx)을 유로 5단계의 20% 수준인 0.4gkWh까지만 허용한다.

업계 관계자는 "이 기준에 초과되면 신차를 아예 등록할 수 없어 배출 저감 장치를 장착해야하기 때문에 디젤차 가격이 높아질 것"이라며 "환경오염 우려와 비용 부담 등으로 점차 디젤차의 시대는 가고 자연스레 친환경 차량으로 전환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일부 유럽 국가는 디젤차 줄이기에 팔을 걷어 붙였다. 영국은 지난 2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로부터 자동차 배기가스 규제가 미흡하다는 지적을 받아 2020년부터 디젤차 운전자들에게 런던 도심 진입 시 교통혼잡 부담금 외에 대기오염 방지를 위한 환경세 10파운드(약 1만7000원)를 더 부과할 예정이다.

대기오염이 심각한 프랑스 파리에서는 첫 여성시장으로 당선된 사회당 안 이달고 후보가 디젤차를 파리시에서 퇴출시키겠다는 공약을 내걸기도 했다. 지난 3월에는 중국 베이징과 비슷한 수준까지 대기오염이 극심해지자 차량 2부제라는 임시 처방을 내린 바 있다.

◇ 역행하는 국내 환경규제…역차별 논란도
반면 국내에서는 디젤 차량 규제에 지나치게 관대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우선 국내에서 디젤차가 인기를 끄는 요인은 ℓ당 200원 가까이 저렴하고 연료효율도 20∼30% 높기 때문이다.

경유값이 저렴한 이유는 환경부가 경유 버스와 트럭을 비롯한 상용차에 대해 법적 지원을 하고 있는 덕이다. 대기환경보전법은 가솔린 소형 승용차의 질소산화물 배출기준은 ㎞ 운행당 0.044g로 규정하고 있는 반면 현행 디젤차는 기준이 0.18g으로 4배 이상 높다. 내년 9월부터 새 규정이 적용돼도 0.08g으로 가솔린 엔진보다 2배 높다. 그만큼 많은 질소산화물을 배출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내년 9월부터는 디젤 택시 운영도 허용돼 대기오염이 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택시는 일반차량보다 운행량이 4~5배 많으며 대도시의 교통체증이 심한 곳에서 주로 운행하기 때문에 실제 배출되는 질소산화물은 보급대수보다 더 늘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게다가 가솔린 엔진과는 달리 디젤 엔진은 신차 출시 후 실시하는 질소산화물과 탄화수소 검사 대상에서 제외돼 있다.

일각에서는 이같은 정부의 디젤차 밀어주기가 소상공인들이 아닌 연비가 좋은 고가의 수입 디젤 세단 이용자들에게 혜택이 돌아간다고 지적한다. 또 디젤엔진의 배출 물질 저감 기술 등이 발달된 유럽의 유로6 규제를 그대로 적용해 국내업체가 피해를 볼 것이라는 예측도 따른다.

내년 시행을 앞두고 있는 저탄소차협력금제도에 대한 반발도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제도는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자동차를 구입하는 소비자에게 부담금을 부과하는 대신 적게 배출하는 자동차에 대해서는 보조금을 지급하는 것으로 전문가와 업계로부터 배출 물질 감소에 효율적이지 않으며 국내업체 경쟁력을 약화시킨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환경정책평가연구원은 저탄소차협력금제도 도입 시 유럽산 디젤차 가격이 대당 최대 660만원까지 인하된다는 연구결과를 내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대형 승용차 판매가 많은 국내 완성차업체의 경우 유로6 규제나 저탄소차협력금제 등으로 급격히 연비 향상 등의 부담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며 "하이브리드 차나 전기차와 같은 친환경 차량이 국내에 뿌리내릴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제도의 마련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국내 업체는 소비자 취향에 따를 수 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현대차는 수출용 신형 쏘나타에는 하이브리드를 장착하고 국내에는 디젤 엔진을 얹을 예정이다. 현대차 관계자는 "디젤 세단에 대한 소비자의 수요 증가로 그랜저 디젤 등을 출시하고 있지만 세계적으로 환경오염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이를 대비해 전기차나 수소연료전지차 등을 개발하는 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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