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반쪽짜리' 재벌총수 연봉 공개
[기자수첩] '반쪽짜리' 재벌총수 연봉 공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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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남라다기자] 최근 '억' 소리나는 등기임원들의 연봉이 처음으로 공개돼 화제다. 하지만 법망을 피해 공개를 꺼리는 재벌 총수들의 움직임에 '반쪽짜리'라는 비판도 거세다.

임원 연봉 공개는 지난해 5억원 이상 받는 등기임원은 의무적으로 공개하도록 한 '자본시장법' 개정에 따른 조치다. 법적 책임이 있는 등기임원들의 경영 투명성을 제고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연봉 공개를 회피하려는 재벌 총수들의 꼼수는 비난 여론에 불을 지폈다. 이같은 모습은 유통업계에서 유독 뚜렷하다. 신세계그룹은 정재은 명예회장, 이명희 회장, 정용진 부회장, 정유경 부사장 중 단 한 명도 이번 임원 연봉 공개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연봉 공개를 의식해 등기임원에서 아예 사퇴하는 재벌총수도 줄을 잇고 있다. 오리온 담철곤 회장, 이화경 부회장이 지난해 말 사퇴한 데 이어  동서 김상헌 회장도 지난달 7일에 주총에서 물러났다. 이후에도 하이트진로 박문덕 회장이 등기이사직에서 사임했다.

특히 적자기업 경영진의 경우 등기이사 사퇴카드를 꺼내들 공산이 크다. 실적악화에도 불구하고 연봉 잔치를 벌인다면 세간의 눈총이 더욱 따가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실제, 오리온은 실적 악화에도 등기이사 연봉을 높여 세간의 눈총을 사고 있다. 오리온은 지난해 연결기준 영업이익이 1.88% 감소했음에도 등기이사 1인 평균 보수는 54.88%나 증가해 논란이 됐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등기임원의 등재 여부가 권한과 책임의 괴리 문제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이는 고스란히 경영의 투명성 저하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현재 상당수 재벌 총수들은 등기이사에서 사임하더라도 회장, 부회장과 같은 직함은 그대로 유지하며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정용진 부회장도 여전히 그룹 내에서 경영의 구심점 역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최근 정치권에서도  임원보수 공개 대상을 미등기임원으로 확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민병두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작년 국회에서 등기임원의 보수가 공개되는 법이 통과되자 등기임원에서 미등기임원으로 갈아타기를 통해 보수공개를 회피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며 "본래 연봉 공개를 통해 기업경영의 투명성을 높이려는 법 개정 취지를 무력화하는 것이어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라고 꼬집었다.

프랑스 철학자 볼테르는 '강한 권력은 큰 책임이 따른다'는 명언을 남겼다. 재벌 총수들이 법망을 피해 과도한 연봉을 챙기는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개선이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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