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乙'마저도 아쉬운 IT노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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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이철기자] 국내 소프트웨어(SW) 개발자들이 자신들을 스스로 '노예'라고 칭하는 일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IT 노동자들의 업무강도를 둘러싼 논란 역시 비단 이번 뿐만이 아니라는 얘기다. 
 
최근 장하나 민주당 의원이 IT노동자를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들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7.3시간으로 집계됐다. 주당 70시간 이상 일한다는 응답도 19.4%에 달했고 100시간 이상 일한다는 사람도 4.8%나 됐다. 개발 마감에 쫓겨 밥먹듯 하는 야근 탓에 병원 신세를 지기 일쑤다.
 
이처럼 열악한 근무환경은 하청에 재하청을 거듭하는 다단계 하도급 때문이다. 대개 국가기관이나 삼성SDS, LG CNS 등 시스템통합(SI) 업체들이 정보시스템 개발을 발주하면 중견 IT기업들이 1차로 수주해 자회사 등에 다시 도급을 주고, 이 업체들은 개발 분야를 쪼개 다시 중소 업체에 맡긴다. 4차 하도급 이하는 대부분 인력파견업체다.
 
심지어 6~8차까지 하도급이 형성되는 경우도 다반사다. 최하층에서 근무하는 개발자들은 초과근로는 물론, 임금 체불 등의 문제까지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이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 의원은 최근 소프트웨어산업진흥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사업금액의 50%를 초과하는 하도급 금지 △하도급 계획서 사전제출 및 발주자의 승인 의무화 △할인율(수수료) 5% 초과 금지 △표준하도급계약서 사용 의무화 등이다.
 
하지만 법안의 일부 내용이 IT산업의 특성이 감안되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4일 여의도 국회도서관에서 개최된 관련 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은 하도급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다는 점에 대부분 공감하면서도 사업금액의 50%를 초과하는 하도급 금지 조항에 대해선 좀 더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이지운 한국IT서비스산업협회 부회장은 "SI 및 SW사업은 기술과 자원을 통합해 최적의 정보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이라 핵심 업무 비중을 산출하기 곤란하다"며 "사업의 성격과 유형, 업무 비중 등이 상이하기 때문에 일률적으로 규제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지적했다.
 
물론 IT산업의 특성을 감안하면 업계의 주장도 일면 설득력을 얻는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IT노동자들의 요구가 '근로기준법을 준수해 달라'는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는 점이다. 업계와 노동계, 정치권 모두가 문제해결에 대한 인식을 같이 하고 있는 만큼 SW개발산업의 구조적 변화를 위한 심도있는 논의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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