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5조 펀드 환매의 '불편한 공식'
[기자수첩] 5조 펀드 환매의 '불편한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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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한수연기자] 펀드시장이 수조원대의 '환매 폭풍'에 흔들리고 있다. 지난 8월28일부터 상장지수펀드(ETF)를 제외한 국내 주식형 펀드에선 36거래일 연속으로 자금이 이탈했다. 역대 최장 기록이다.

이 기간 누적 순유출 규모는 5조4368억원에 달한다. 일일 순유출 규모도 증가세다. 이달 초만해도 1000억원 이하에 그쳤던 이탈 자금이 최근 2000억원 안팎까지 늘어났다.

펀드 환매의 방아쇠는 코스피 랠리가 당겼다. 개인 비중이 높은 공모형펀드의 순유출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 대표적이다. 최근 코스피 지수가 저항선인 2050포인트를 돌파하며 연일 강세를 보이자 개인투자자들의 '이때다 싶은' 환매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칠 줄 모르는 랠리에 일각에선 '그냥 둘 걸'하는 후회 섞인 목소리도 나오지만 환매가 답이라고 생각하는 개미가 월등히 많다고 수치는 말한다.

사실 '코스피 2000선=펀드 환매'는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때 소위 '피를 본' 개미들의 뼈아픈 경험에서 비롯된 공식이다. 한 순간에 휴지조각이 돼 버린 주식 앞에서 손해를 경험해야 했던 개미 대부분은 이제 '고위험 고수익'보다는 '저위험'만을 외치게 됐다. 2000선에서 적당히 차익만 봐도 '감지덕지'라는 것이다. 결국 2008년 당시 140조원에 달하던 국내 주식형 펀드 설정액은 최근 85조원 수준으로 쪼그라들었다.

펀드 자금 이탈이 가속화되면 자산운용사들은 주식을 팔 수밖에 없다. 더 사고 싶어도 환매 때문에 추가 매수 여력을 잃게 돼서다. 지수 상승에 제약이 따르는 건 당연한 이치다. 이러다 펀드시장마저 사양길로 접어드는 게 아니냐는 업계 관계자들의 자조 섞인 목소리가 최근 심심찮게 들려오는 배경이다.
 
악순환의 고리는 어디서 끊어야 할까. 이 역시 수치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잇따른 환매행진에 설정액이 급감하는 가운데서도 국내 주식형 펀드가 양호한 수익률을 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3분기 국내 주식형 펀드 수익률 상위 10개의 평균 수익률은 9%를 상회했고 이 기간 30%가 넘는 성과를 낸 펀드로 여럿이다. 운용사의 뼈 깎는 노력이 동반된 높은 수익률 앞에선 개미의 '환매선'도 결국 높아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개미들이 대박만 좇는다는 건 옛날 얘기다. 이는 운용사들이 수익률 몇 퍼센트로도 개미들에게 확고한 믿음을 심어줄 수 있다는 뜻도 된다. 그리고 그것이야말로 자산운용사들의 몫일 터이다. 개미들의 환매만 탓할 것이 아니라 업계의 뼈 깎는 노력도 필요한 시점이다. 운용사가 투자자로부터 확고한 믿음을 살 때 개미의 펀드 환매선도 높아질 수 있다. 펀드시장의 미래도 거기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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