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모두를 망치는 빚 탕감정책
[기자수첩] 모두를 망치는 빚 탕감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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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윤동기자] 채무탕감정책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일부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는 불만을 불식시키기 위한 땜질식 처방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 정도다.

실제 금융당국은 지난 22일 외환위기 당시 연대보증을 섰던 피해자 11만명을 구제하겠다고 발표했다. 이후 이틀만에 주요 금융지주 회장 간담회를 통해 은행권 자체 프리워크아웃 등으로 하우스푸어 2만2000가구의 빚을 탕감해주겠다는 방안을 내놨다. '빚 갚으면 손해'라는 말이 나올만 하다.

이는 정부의 당초 계획과도 차이를 보인다. 지난 3월 국민행복기금 출범 당시 계속되는 형평성 논란에 정부는 '이번 한 번만 한시적으로 채무탕감 정책을 진행한다'고 공언했다. 방식의 차이는 있지만 여론에 등떠밀려 말을 바꿨다는 비판에서 자유롭기 힘든 것도 이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지금까지 나온 빚탕감 정책만으로도 100만명의 채무자들이 혜택을 볼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그야말로 건국 이래 최대 규모다.

물론 서민들의 자활의지를 돕겠다는 정부 취지에 무작정 반기를 들기는 어렵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긍정적인 파급효과를 감안한 사회적 합의라는 점에서 논란의 소지가 적지 않다.

이미 금융권 곳곳에서는 '버티고 보자'는 식의 도덕적 해이가 확산될 조짐이다. 어렵게 빚을 갚아온 선량한 소비자들의 박탈감은 더할나위 없다.

채무자들의 빚탕감을 통한 경기활성화라는 정책 목표 역시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여전하다. 당장 취약계층의 빚은 줄어들지 몰라도 정상적인 경제생활을 영위하기 위한 소득은 늘어날 기미가 없기 때문이다. 결국 경기상황이 개선되지 않는 상황에서의 빚탕감 정책은 악순환만 초래할 가능성이 높다.

일각에서는 정부의 빚탕감 정책이 100만명을 위한 4000만명의 '아름다운 희생' 쯤으로 여기는 분위기도 있다. 하지만 소수일지라도 선의의 피해자가 발생할 수 있는 정책은 결코 '아름다운' 정책이 될 수 없다.  무분별한 빚탕감 정책은 오히려 사회 전반에 '도덕적 해이'의 씨앗으로 잠복할 가능성이 높다.

정치권과 여론에 등떠밀려 내놓는 선심성 정책의 경우 일부가 아닌 모두를 망칠 수 있다는 목소리에 좀더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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