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은행을 위한 재형저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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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문지훈기자] 서민들의 재산형성을 돕고자 하는 취지로 18년 만에 부활한 재형저축이 정작 서민은 안중에 없는 모습이다. 오히려 은행들만 수십만 고객유치에 함박웃음을 짓고 있을 뿐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만 갈수록 커지고 있다. 

지난 6일 국민·우리·신한·하나 등 16개 은행들은 일제히 재형저축 판매에 돌입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출시 첫 날에만 27만9180명이 가입할 정도로 뜨거운 관심을 받고 있다.

하지만 절차상의 문제가 발생하는가 하면 부작용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먼저, 엄격해야할 가입기준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 재형저축은 총 급여액 5000만원 이하의 직장인 또는 종합소득금액 3500만원 이하 사업자가 가입할 수 있지만 대상자임에도 가입이 불가능하거나 대상자가 아니어도 가입할 수 있는 경우가 발생한 것.

가입에 필요한 소득확인증명서는 현재 2011년 자료만 담고 있어 지난해 입사한 연봉 5000만원 이하인 직장인은 재형저축 가입이 불가능하다. 이에 금융당국과 국세청은 지난해 근로소득 원천징수영수증으로도 가입이 가능케 했지만 올해 입사자들은 내년 초 연말정산이 마무리돼야 가입할 수 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고액 연봉자가 지난해 일정기간 휴직 등의 사유로 5000만원 이하의 연봉을 받았을 경우에도 가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미숙한 행정이 부른 치명적 오류라고밖에 볼 수 없다. 

여기에 은행 간 경쟁과열로 인한 서민들의 피해 가능성도 제기된다. 중도 해지 시 불이익이나 변동금리로 전환 등의 주의사항은 제대로 알리지 않고 이자소득세 면제, 고금리 등 재형저축의 장점만 부각하는 불완전 판매 및 기업 거래처 직원들의 가입을 강요하는 꺾기 등에 대한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은행별 과도한 금리 경쟁으로 애꿎은 고객만 피해를 본 사례도 있다. 판매 첫 날 일부 은행은 경쟁에서 뒤쳐지지 않기 위해 뒤늦게 금리를 인상, 고객들이 기존 상품을 해지한 뒤 재가입해야 하는 불편을 겪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재형저축이 본래 취지와는 달리 편법 상속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고액 자산가가 사회생활을 시작한 자녀들에게 재형저축을 가입하게 한 뒤 대신 불입하는 방식으로 상속하는 방식이다.

결국 이같은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 이상 재형저축은 서민들만을 위한 상품으로 자리매김 하기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금융사들의 '장기고객 확보' 수단으로 전락할 개연성이 높다. 늦게나마 금융당국과 국세청이 보완책 마련에 나선 만큼 이같은 문제점이 말끔히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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