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그러진 소비행동과 소비자시민사회
일그러진 소비행동과 소비자시민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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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순영 한국소비자원 연구위원
   
 
얼마 전 대기업 등을 협박해 2010년부터 올해까지 206차례에 걸쳐 2억 이상의 금품과 전자제품을 뜯어낸 혐의를 가진 사람이 경찰에 구속됐다. 언론에서는 일제히 '블랙 컨슈머가 기업이 힘들게 한다'는 식의 기사를 쏟아냈다.

사건을 어떤 시각에서 이해하는가는 사건의 진실에 접근하는데 매우 중요하다. 그리고 소비자를 어떤 시각에서 이해하는가도 기업과 정부는 물론 소비자에게도 매우 중요한 일이다. 대기업을 협박해 금품을 뜯어낸 사람은 '블랙 컨슈머'로 명명되기 보다는 다른 용어가 필요하다. 만약 나에게 그 용어를 만들어보라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Our Twisted Hero)'을 패러디해 '우리 시대의 일그러진 소비행동(Our Twisted Consumption)'이라 명명하고 싶다.

경쟁사회에서 소외와 절망감을 느껴 그것을 반사회적으로 푸는 사람이 증가하는 현실에서, 기업을 그 대상으로 삼는 사람이라고 왜 늘지 않겠는가? 그런 일부 사람들을 '컨슈머'로 명명하면 '컨슈머'의 사랑에 의해 생존하는 기업들이 자칫 대다수 건전한 소비자들마저 피해의식이나 경계심의 대상으로 대할 수 있는 우려가 있다. 또한 현상을 특정 사람에 소속된 문제로 바라보기보다 특정 행동에의 문제로 바라봐야 문제점 성토보다 해결책 찾기에 좀 더 몰입할 수도 있게 된다. 더구나 '블랙(Black) 컨슈머'라는 용어는 부지불식간에 인종적·문화적 편견을 퍼트린다고 해서 영어권에서는 사용하지 않은지 꽤 된 용어이기도 하다.

'블랙 컨슈머' 용어를 사용하지 말자고 해서 그들이 하는 일그러진 소비행동까지 옹호할 생각은 조금도 없다. 그들이 처음 한번은 몰라도 왜 계속해서 기업을 협박대상으로 삼았는지에 대해 처음 응대한 직원의 태도와 스킬 상에 부족한 부분은 없었는지, 회사 내 대응시스템에 일관성이 부족했던 것은 아닌지 등을 구체적으로 검토해야 할 것이다. 또한 왜 우리사회에서 기업을 대상으로 한 공갈·협박이 증가하는 지에 대해 기업, 정부, 소비자 모두의 진지한 성찰이 필요할 것이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는 지난 8월 소비자교육촉진법을 제정하여 '소비자시민사회'에서의 소비자역할을 교육을 통해 적극 지원할 것을 공표했다. '소비자 시민사회'란 소비자가 개별 소비자로서의 특성과 소비생활의 다양성을 서로 존중하면서도 자신의 소비생활 관련 행동이 현재와 미래 세대에 걸쳐 시장경제 및 지구환경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자각하고, 공정하고 지속가능한 사회 형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사회를 말한다.

법령의 제정에 따라 소비자들은 학교나 평생교육시설에서 이루어지는 소비자교육을 통해 소비생활에 대한 지식을 습득하고, 이를 적절한 행동으로 연결할 실천적 능력을 배우면서, 소비자시민사회를 구성하는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소비행동을 다각적인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됐다. 이러한 일본 정부의 정책에 따라 일본 기업들은 소비자시민사회를 위한 소비자교육에 자금 및 프로그램을 지원하며 기업시민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해 가고 있다.

우리사회에서 균형 잡힌 성숙한 소비를 하는 소비자시민들이 지금보다 더 늘어났으면 좋겠다. 그래서 그 사람들의 소비행태가 일상적으로 목격되고 그 사람들의 목소리가 다른 소비자들에게도 전달 및 공유되는 체계를 구축할 수 있다면 지금의 '일그러진 소비행동'은 그 강도와 빈도가 약해질 것이 틀림없다.

지금은 소비자시민사회로의 이행을 위한 논의가 시작되어야 할 때이다. 소비자교육 기본법(가칭) 등과 같은 법안을 제정해 사회전반의 원칙을 담아낼 필요도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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