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증권사들, '보고서 순화'부터!
[기자수첩] 증권사들, '보고서 순화'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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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한수연기자] '업종선정 기준은 3D Distance Sensitivity Strategy로 이는 크게 Core 3D Distance Sensitive Strategy라는 Price, Earnings, 수급을 이용한 부분과 D PEG 와 Seasonal Anomaly라는 보완적인 요소가 결합된 Model…'

최근 한 증권사가 발간한 보고서 본문이다. 읽다보니 얼마나 많은 투자자들이 이 보고서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곧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익명을 원한 증권맨은 말했다. "업계 관행상 그렇죠 뭐..."

9일 한글날을 앞두고 각계에서 언어순화의 바람이 일고 있지만 증권업계만은 예외인 듯 하다. 투자보고서가 대표적이다. 컨센서스, 펀더멘탈, 센티먼트 등 특정단어를 발음 그대로 옮겨 놓는 건 기본이고, 영단어 뒤에 조사만 붙여 문장화(?) 해놓은 것도 적지 않다. 공매도(空賣渡), 차주(借株) 등 일련의 한자어는 한 보고서에서만 수십 번씩 나오기도 한다. 검은 머리 투자자에게 영어와 한자로 투자를 권유하는 셈이다.

물론 증권사 보고서 특성상 전문용어는 필수적이다. 어색한 번역이 불러올 오해를 막기 위해 원어 그대로 표현하는 것도 일면 수긍할 수 있는 대목이다. 투자자가 전문용어를 충분히 숙지한 후 투자에 임해야 한다는 증권사의 주장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지만 일반 투자자들, 특히 주식 입문자들에게 업계 용어란 생소할 수밖에 없다. 상황과 맥락에 기대 대충 이해하고 넘어가는 과정에서 잘못된 투자가 이뤄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투자의 길잡이'가 돼야 할 증권사 보고서를 정작 소비주체인 투자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고 있는 셈이다.

최근 은행권은 이같은 문제를 인지하고 개선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전국은행연합회가 이달부터 은행 용어 순화 작업에 나서고 있는 것. 그간 '30백만원', '당점 및 네트점', '타발송금' 등 관행으로 써오던 용어들을 일반인도 이해하기 쉽게 바꿔 '고객중심'의 문화를 만들어가겠다는 취지다.

단순히 전문용어라는 이유로 투자자들의 편의와 이해를 져버리는 것은 바람직한 투자권유가 아닐 것이다. 몇개의 용어만 풀어쓰더라도 소위 '개미들'의 증시 이해도는 훨씬 높아질 수 있다. 

투자자들의 증시이탈로 수익성 악화가 우려된다는 앓는 소리에 앞서 주식 초보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보고서를 내는 것은 어떨까. 증권사들이 한결같이 외치는 '투자자 중심'의 해법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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