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고개숙인 '금융 검찰' 금감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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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강현창기자] 지난해 증권가는 'ELW스캘퍼사건'에 대해 법원의 판결을 앞두고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HFT(고빈도매매)와 LP(유동성공급자), DMA(전용선) 등 전문용어에 대한 지식도 필요한데다가 전문투자업에 대한 깊은 이해가 없다면 명확한 법적판단이 어렵지 않겠냐는 우려였다.

그러나 이는 기우에 불과했다. 지난해 11월28일 열린 첫번재 판결공판에 참석했던 증권 관계자들은 "투자업에 대한 깊은 이해에 놀랐다"며 "'괄목상대'(刮目相對)가 따로 없다"고 입을 모았다. 금융업계가 법조계에 엄지를 치켜들고 상대를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엄지를 치켜 들 자격조차 없이 고개부터 숙이게 생겼다. 금융당국이 무려 1년이 넘는 검사에서도 밝혀내지 못한 저축은행의 비리를 검찰이 단 한 달 남짓한 수사로 샅샅이 찾아낸 것이다.

지난 20일 검찰은 3차 구조조정 대상이 된 4개 저축은행들의 불법대출 규모가 1조2882억원이라고 발표했다. 이중 대주주가 횡령·배임한 액수만 1000억이 넘는다.

1조원이 넘는 불법대출 규모가 드러나자 금융권은 충격에 휩싸였다. 당초 금감원은 이들 저축은행에 대해 BIS자기자본 비율을 문제삼았지 불법대출 같은 비위사실은 지적조차 하지 않았다.

금융당국은 자신들의 검사가 금융권에 '서슬퍼런 칼날'로 비춰진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다르다. 1년이 넘는 검사 기간 동안 김찬경 회장과 임석 회장 등은 품앗이 증자를 통해 부실을 감췄으며 김인순 대표는 여전히 가짜통장을 관리하며 고객돈을 빼돌리기 바빴다. 검사를 피하려는 로비도 거리낌이 없었다.

급기야는 금감원 직원이 길거리에서 신원 불상의 사람에게 폭행을 당하고, 모 대주주는 총을 구하러 다닌다는 소문이 도는 등 업계의 '당국 깔보기'는 절정에 달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자마자 업계 분위기는 달라졌다. 수사 착수 직후 김 회장은 돈을 싸들고 야반도주를 시도하는가 하면 한주저축은행의 한 임원은 고객돈을 빼돌려 잠적해 버렸다.

이처럼 금융당국의 권위가 비(非)전문가인 법조계에 전문성과 실효성 양쪽에서 모두 고개를 숙이는 일은 당국 스스로 자초한 결과다. 기자가 만난 한 수사관은 "금감원의 조사가 진행되고 있었음에도 서류만 보면 빤히 나오는 불법사실들이 방치된 이유를 모르겠다"며 혀를 찼다.

당국이 '금융 검찰'로서의 위엄을 되찾기 위해서는 철저한 자기반성과 과감한 결단력이 필요하다. 온갖 비리와 부패로 얼룩진 '저축은행 사태'를 끝으로 금융당국의 존립가치마저 의심받는 일은 더이상 없어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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