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는 왜?’라고?
‘대우는 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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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해체된 지 10년째를 맞은 대우그룹의 옛 임직원들의 모임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대우그룹 해체의 이유를 그들 나름대로 밝힌 책 ‘대우는 왜?’가 나왔다는 보도가 있었다.

한 메이저 신문의 보도만 보자면 전직 대우 최고경영자(CEO) 33명이 필진이 참여한 이 책에서는 대우그룹 해체의 이유를 주로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IMF)의 말만 쫓아 DJ 정부가 국익을 무시한 채 모든 잘못을 김우중 회장이나 대우그룹에 덮어씌웠다고 주장한다.

즉, 그룹 해체의 원인이 내부적인 잘못은 없고 오직 DJ 정부의 잘못이라는 얘기다. 대우 CEO 출신 필자들로서는 그렇게 주장하고 싶을 수도 있겠다 싶지만 과연 그런가.

또 이들은 대우가 단지 세계경영을 추구한 정신으로 사회를 위해 기여하고 봉사하고자 했다고 주장한다. 국가의 미래에 이바지하고자 세계경영을 외치며 유사 이래 처음으로 전 세계를 누비고 다녔다는 자기 변명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물론 대우그룹 해체를 주도했던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가 최근 한 일간지를 통해 대우가 구조조정에 소극적이어서 시장의 신뢰를 잃었다고 말한 것에 발끈한 것도 이런 변명이 나오는 계기가 되었을 성 싶기는 하다.

아직도 사람들이 대우 해체에 대해 궁금해 하며 대우 사람들의 해명을 듣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이런 자신들의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놨다는 것이지만 순수하게 대우에 대한 자부심만으로 이런 주장이 선거를 코앞에 둔 이 시점에 나왔을지는 여전히 궁금하다.

대학 졸업 직후 한 때 말단 직원으로 1년여 대우그룹에 몸담을 적이 있는 필자도 대우의 파이오니어 정신을 부정하지는 않는다. 정확한 문구는 기억나지 않지만 세계를 무대로 꿈을 펼치자는 뜻의 사시가 벽에 걸렸던 사무실 풍경이 신선했던 기억은 있다.

또 젊고 야심만만한 젊은이들이 대우 직원들이 다른 회사 직원들보다 돈이 많다면 그건 월급이 많아서라기보다 돈쓸 시간이 없어서라고 푸념할 만큼 밤낮없이 일에 매달리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외부 약속이 없는 날이면 직원들과 함께 구내식당에서 식판에 담긴 점심을 먹곤 하던 김우중 회장의 소박한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우는 결국 ‘남의 돈을 내 돈처럼’ 활용하는 능력이 유달리 탁월해서 돈이 생기면 기업의 내실을 다지기보다 새로운 기업을 인수하는 데 다 쏟아 부음으로써 급속 성장은 했지만 하체가 부실해 언제라도 쓰러질 위험을 안고 있는 기업집단이었다.

개인적으로 대우의 패기가 꺾인 것은 아쉬움이 남는다. 하기는 패기가 꺾이기로야 대우뿐이겠는가. 청년들부터 해서 사회 전체가 점차 패기를 잃어가며 소득에 목매달고 사는 오늘인데 이런 사회에서 패기를 얘기하는 것 자체가 동키호테의 몽상을 넘어서기 어렵지 않은가.

문제는 대우그룹이 해체됨으로써 국민경제에 엄청난 손실이 발생한 것처럼 얘기하는 저들의 발상이다. 그룹이 무너지면 계열사의 모든 사업이 망하는 것처럼 호들갑을 떨던 당시 메이저 언론들의 보도가 새삼 떠오른다.

그러나 지금도 대우조선을 비롯한 여러 계열사들은 여전히 그들의 일을 벌여나가고 있다. 그룹 해체는 기업이 망하는 것과 상관없는 일이라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다.

물론 당시 부실 계열사들은 저절로 문을 닫을 수밖에 없었고 그것은 오히려 국가경제에 보탬을 준 일 아닌가. 오너가 곧 기업이라는 발상만 벗어던지면 그룹 해체는 국가 경제에 전혀 영향이 없지만 지금도 정부나 메이저 언론들은 툭하면 국익을 내세우며 재벌들의 이익을 옹호하기에 열을 올린다.

이제 기업집단의 규모가 커지면서 정부는 그들에 대한 컨트롤 기능을 상실해가고 있다. 사회적 균형추가 계속 한쪽으로 기울어져 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이 양극화의 심화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그리고 양극화가 가속될수록 정부는 점점 더 소수를 위한 이익집단으로 전락해 갈 수밖에 없다.

균형과 견제의 기능을 상실한 정부는 더 이상 국가의 중심이 될수 없다. 다수 국민의 이익을 소수 재벌을 위해 희생시키는 정부로는 그 국가의 미래를 꿈꿀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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