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ccupy 여의도' 석달만에 철수…남긴 것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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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거래소 앞 反자본 시위 '무관심' 속 종료

[서울파이낸스 양종곤기자] 'Occupy 월가'로부터 파생된 'Occupy 여의도'는 대학생들의 치기어린 시위에 불과했을까? 이번 反자본 시위가 남긴 것은 무엇일까?

한국거래소 앞에서 83일간 금융권을 상대로 투쟁을 벌인 대학생들의 천막 집회가 시민들과 '여의도'의 무관심 속에서 막을 내렸다.

▲ 2011년 12월30일 여의도 한국거래소 앞에서 4번째 텐트철거 후 앉아 있는 참가 대학생, 사진제공 : 대학생사람연대

◇ 거래소 정문 찾은 대학생 6인

지난 12월10일 오후 4시40분 '대학생사람연대' 소속 대학생 6명이 텐트를 들고 여의도 한국거래소 정문 옆에 짐을 풀었다. 이들은 '아프니까 점령한다'는 취지로 장기 집회를 결의했다. 이날 경찰병력은 신속히 움직였다. 오후 5시30분경 전경버스 2대가 도착했고 경찰서 서장도 방문해 지휘부를 꾸렸다.

이들이 거래소를 집회 장소로 결정한 것은 금융의 중심지라는 생각에서 였다. 집회에 참가한 한 대학생은 "거래소는 수많은 자금이 오고가는 곳"이라며 "1% 금융권에 대해 항의하는 집회 명분이 있는 곳이라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다음날부터 이들은 본격적으로 집회에 나섰고 이날부터 언론사의 취재도 시작됐다. 12일 첫 취업과 등록금 문제로 오전 기자회견을 했다. 이날 담당구청은 다음날까지 자진철고와 강제철고를 동시에 권고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 계속 MBC와 금감원 등을 오가며 거리 행진 시위, 각종 퍼포먼스, 촛불 문화제 등을 계속했다. 당시 현장에 있었던 거래소 관계자들의 전언에 따르면 예상보다 시민들의 관심은 적었다.

같은 달 15일 기자회견과 28명이 모여 다시 집회를 시작했다. 이때 처음 경찰과 대치를 시작했고 이날 텐트는 철거됐다. 이들은 집회 후 자정이 넘긴 시각이돼서야 바닥에 모포를 깔고 4명이 노숙했다. 그 후 며칠동안은 텐트 대신 비닐천막 안에서 잠을 청해야하는 신세였다.

◇ 대학생, 구청 트럭 위로 올라가다

지난 12월 26일 경찰과 시위대의 가장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오후 1시35분 구청차량 2대가 도착해 비닐천막 옆 취사도구 및 식자재를 수거하기 시작했다. 이에 한 학생이 구청 수거차량 위로 올라가 항의했다. 하지만 수거 차량은 물건을 싣고 철수했다.

대학생들은 다시 오후 2시경 텐트를 설치했지만 경찰 저지로 무산됐다. 이때 몸싸움이 있었고 텐트도 일부분 찢겨졌다. 오후 8시 다시 텐트를 치려고 했지만 또 실패하고 이들은 얇은 이불 위에 주저앉았다.

집회 시작 20일이 넘어간 후에도 이들은 거래소 앞에서 분필로 땅에 구호 그리기 등의 퍼포먼스와 집회를 이어갔다. 카드론 관련해 진보신당, 사회당 등 정치권도 집회에 가담했다.

하지만 1월로 접어들면서 이들의 기세도 한풀 꺾였다. 1월2일 거래소 증시 개장을 맞아 12명의 시위 인원이 냄비를 치고 소리를 지르며 소란을 피운 게 거래소가 '긴장할'만한 가장 큰 소란이었다.

경찰들은 매일 4~6명씩 이들은 집회를 지켜보기 위해 상주했고 시위자들은 텐트 안에 대기하며 갑작스런 철거에 대비했다. 집회나 퍼포먼스를 연출한 날보다 조용히 지나가는 날의 횟수가 점차 늘어났다.

이 기간 신텍 상장폐지 반대 소액주주 운동 등도 이들 옆에서 열렸고 지난달 6일 사무금융노동조합연맹의 한화관련 기자회견이 열리며 언론의 관심도 점차 멀어졌다.

결국 집회 시위 83일째인 지난 3월1일 이들은 짐을 정리했다. 이들이 모든 텐트와 집기류, 현수막 정리를 마친 시각은 그날 오후였고 현재 거래소 앞 이들이 다녀간 '흔적'은 찾아볼 수 없다.

이들은 이번 집회는 분명히 소기의 목적이 있었다고 자신하고 있다. 그리고 '진짜배기' 집회는 '지금부터'라는 입장이다.

집회에 참가한 한 대학생은 "어느날 자신을 한 금융권 종사자라고 밝힌 분이 찾아와 자신도 몇 백억원을 굴리지만 지갑에는 몇 만원 밖에 없다며 '미워하지 말라' 힘내라'고 했다"며 "거래소 앞 집회는 끝났지만 시청 광장에서 계속 우리의 의지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 "이들은 과격하지 않았다"

한국거래소 앞에 대규모로 장기간 집회가 열린 사례는 지난 2007년 코스콤 비정규직원 천막농성 이후 처음이다. 코스콤은 당시 1년6개월동안 거래소 앞에서 격렬한 농성을 벌였다. '대학생사람연대'에 따르면 이들은 집회내내 시민들한테 식료품 등 많은 지원을 받았다고 한다.

집회에 참가한 한 대학생은 "시민들이 음식을 매일 음식을 보내왔는데 한 야간 노동자가 50만원 돈봉투를 건네기도 했다"며 "천막이 철거당했다고 트위터에 올리니까 감자탕을 배달시켜준 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집회 동안 거래소로부터 어떠한 '지원'도 받지 못했다. 물과 가스는 자체적으로 공수해 썼고 전기도 자체 발전기를 가동했다. 단 한차례 식사도 제공한 적이 없었으며 화장실도 대부분 근처 건물을 이용했다. 거래소를 쓸 때도 본관은 쓰지 못하고 별관을 썼다.

증권업계에서는 이번 상황을 두고 여러 평가를 내놨다. '추운 겨울에 나와서 고생한다'는 동정론도 있었지만 '등록금 문제를 왜 거래소 앞에서 하느냐' '국회 앞으로 갈 일을 왜 거래소로 왔냐'는 목소리가 만만찮았다.

거래소가 이번 시위에 관심 둘 이유는 사실 없었다. 집회도 거래소 내 관할 구역과 1m가량 떨어진 곳에서 이뤄졌다. 거래소 한 관계자는 "거래소 간부들이 이들에 대해 따로 지시한 부분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시장의 관심이 떨어진 이유는 이들이 내세운 구호가 거래소와 관계가 없었기 때문이라는 평가다. 한미FTA폐기, 등록금 폐지, 실업문제 해결, 불안정노동 철폐, 탐욕스런 금융자본 통제였다. 그리고 카드론, 키코 등 상관없는 '주제'가 끼며 집회 본질도 흐려졌다는 것.

실제로 지난해 10월17일 공식적인 미국에서 벌어진 `월스트 리트를 점령하라(Occupy Wallstreet)`의 한국판인 'Occupy 여의도'시위는 거래소 앞에서 무산된 전례가 있다.

이들의 80일간의 집회를 지켜본 거래소 한 관계자는 이렇게 회고했다. "이 친구들은 결코 '과격한' 친구들이 아니었다"며 "정말 추운 날씨에 고생했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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