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황소상과 디케의 저울
[기자수첩] 황소상과 디케의 저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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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양종곤기자] 법원의 상징은 '디케(Dike)의 저울'이다. 디케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이다. 그는 눈을 가린 채 오른 손에는 양팔 저울을, 왼손에는 법전을 들고 있다. 법전은 규칙과 기준을, 양팔저울은 정의를 상징한다.

불행하게도 최근에는 영화 '부러진 화살'로 김명호 교수 석궁 사건이 알려지고 재임용에 탈락한 서기호 판사까지 이슈가 되며 사법부가 '놀림거리'로 전락하긴 했지만 '디케'의 근엄한 상징성은 여전하다.

거창한 얘기는 각설하더라도 최근 신텍의 상장폐지를 유보시킨 한국거래소의 결정은 '디케의 저울'을 떠올리기에 충분해 보인다. 앞서 한화 사태로 '대기업 특혜 논란'을 겪은지 불과 한달이 지나지 않아 내린 이번 결정에 납득하는 투자자가 얼마나 될지 실로 의문이다.

신텍이 상장폐지 위기에 몰린 까닭은 '분식회계' 때문이다. 분식회계는 기업이 고의적으로 재무 상태를 속인 엄연히 불법행위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의 41조원 분식회계 사건으로 분식회계에 대한 사회적 분노는 여전히 팽배하다.

거래소가 신텍을 '살려준' 명분은 기업의 영속성이 감안된 조치였을 것이다. 상장폐지 심사를 앞두고 한솔이엠이로 피인수됐다는 점도 이번 판단에 중대 요인으로 작용했다.

물론 기업의 영속성과 도덕성 가운데 어떤 부분을 상위에 둘지는 거래소의 '재량'이다. 특히 신텍에 '물린' 선의의 투자자들을 감안하면 상폐 결정은 가혹하게 보일 수 있다. 투자자자의 입장을 우선시 하겠다는 거래소의 입장과도 일맥상통한다. 

하지만 분식회계의 경우 좀더 엄격한 잣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투자자들을 우롱하는 분식회계야말로 건전한 투자문화를 해치는 패악(悖惡)이기 때문이다.  

거래소의 주된 책무는 '잘 나가는' 기업은 육성하되 동시에 '의심스러운' 기업은 솎아내는 일이다. 거래소 역시 이같은 책무에 충실했다고 자평해 왔다. 이번 결정이 아쉬운 것도 이 때문이다. 분식회계를 뿌리뽑기 위해서는 보다 강력한 제재를 통해 거래소의 '정의'를 보여줄 필요도 있다는 얘기다.

여의도 한국거래소에는 곰을 밀어붙이는 황소상이 있다. 상승장을 의미하는 '불마켓'이 오고 대신 하락장의 '베어마켓'을 물리치자는 의미다. 사실 이 황소상이 거래소가 지향하는 '본질'일 것이다. 한국거래소에 디케처럼 '정의'를 상징하는 동상이 서 있었다면 거래소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사법부 못지 않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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