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박장관 알고 내 알고 국민이 알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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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파이낸스 강현창기자] # 성남댁은 13평 아파트를 주겠노라는 말에 진태 엄마의 시아버지를 돌봤다. 중풍에 걸려 대소변도 못 가리는 노인을 돌보면서 갖은 구박과 멸시를 다 감내했다. 그러나 진태 엄마는 시아버지가 죽자 아파트를 팔아버리고 입을 싹 씻는다. 뒤늦게 '천벌을 받을 년'이라고 읊조리지만 성남댁의 손에는 남은 게 없다.

지난 1984년 창비에서 출판돼 베스트셀러가 된 故박완서의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의 줄거리다. 최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국내 경제에 대한 발언을 살펴보면 기자의 입에도 이 소설의 제목이 맴돈다.

지난 해 말 박 장관은 2012년 정부의 경제정책시행에 있어 3대 위기로 '유럽'과 '선거', '북한'을 꼽았다. 글로벌경기 침체의 원인으로 지목되는 유로존 금융혼란과 20년 만에 돌아오는 양대 선거, 아슬아슬한 줄타기가 예상되는 북한의 권력승계를 말한 것이다.

당시에도 이같은 발언을 두고 많은 이들이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해당 사안들이 문제가 아닌것은 아니지만 모두 능동적으로 조정하고 반영할 수 없는 '능력 밖'의 사안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내 탓'보다는 '남 탓'만 하는 모양새로 비춰졌다.

박 장관의 이런 발언은 지난 7일 있던 국회 기재위 업무보고에서도 이어졌다. 박 장관은 국회의원들에게 현안을 보고하는 자리에서 지난해 국내 경제 위기의 원인으로 '구제역'과 '이상한파', '국제유가 상승'을 지목했다. 당국으로서는 발생을 통제할 수 없는 '천재지변' 들이다.

올해 국내 경제의 예상 위기도 마찬가지였다. 유로존 부진과 미국선거, 중동 리스크 등 세가지가 박 장관이 올해 국내 경제가 극복해야 할 위기다. 전부 대외 악재다.

곧 자화자찬이 이어졌다. "물가상승률은 낮아지고 있으며 일자리가 40만개 늘어나고 250억달러 규모의 경상수지 흑자를 달성했다"며 '경제를 살렸노라'는 자부심에 표정에선 자신감마저 배어났다.

그러나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한국 경제의 진짜 불안 요인은 유럽, 선거, 북한, 중동이 아니라 '가계부채', '고물가', '부동산 거품' 같은 대내 이슈라는 것을. 그리고 이 문제들은 정부 당국이 앞장서 해결해야할 '발등의 불'이라는 것도 말이다.

우리 정부는 유럽 문제 해결을 위해 유로존을 도울 여유가 없다. 중동 정세를 안정시키자고 호르무즈해협에 항공모함을 보낼 수도 없다. 북한 김정은을 어찌할 수 없으며, 예정된 선거도 막을 수도 없다.

무엇보다도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 각 경제주체가 할 수 있는 것에 한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기라는 것을 기재부가 빨리 깨닫길 바랄 뿐이다. 모두가 아는 바로 그것들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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